100개의 글쓰기 18
응. 그래. 그렇다니까.
‘자식 낳아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에휴...
지 애비 닮은 큰아들 성격은 무심한 편이었지만, 내 속을 썩인 적은 없었지. 늦은 나이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는 모습에 속이 타기는 했지만, 그냥 지켜볼 뿐 어쩌겠어. 도와주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어느 날 결혼할 사람이라고 처자 하나를 데려왔을 때 사실 안심한 거야. 밝고 구김살 없는 아이처럼 보여 다행이었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다른 가족들은 다 미국에 있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아들의 이야기 아니었으면, 웃음 끝에 남아있는 그 아이의 외로움을 몰랐을 거야.
아이고 말 마. 속없는 남편은 싱글벙글이었어. 둘째를 먼저 장가보내고 큰 아들은 어쩌냐 한숨이었는데, 나처럼 마음이 놓였던 모양이지 뭐야. 남들은 결혼한다고 집도해주고 그러는데 뻔한 우리 사정 아는지, 지들끼리 알아서 준비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아팠지.
응 그래, 막내딸만 여우고 나면 이제 걱정거리가 없겠어.
큰며느리가 성격이 좋기는 하지. 아들은 평생 가야 전화하는 일이 없지만, 며느리는 안 그러니까. 그것이 그래도 종종 전화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하니까. 좀 덜 답답하드라고. 아들은 그런거 없었거든.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남편도 한 번씩 전화하고 그러는 모양이야. 아주 나한테는 뚝뚝 거리는 양반이 며느리한테는 벙실벙실하는 거 보면, 뭐가 울컥 올라오는데 참아야지 어쩌겠어.
더 웃긴 이야기 해 줄까? 나는 이 날 이때껏 살면서 우리 아들은 부엌일 못하는지 알았는데, 하더라고. 참 내 기가 막히데. 추석 때 와서 말이야. 며느리가 일 도와준다고 부엌 들어와있었는데, 아들이 눈치 보면서 들어와서 알랑거리는 꼴이 어이구… 진짜.
그러니까 며느리가 갈비랑 잡채랑 해왔더라고. 뭐 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어. 손 많이 가고 힘든데. 뭐. 그래도 편하기는 했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남이 해준 음식이라잖아. 옛날 같으면 다 나 혼자 준비해야 했는데 이젠 좀 손을 덜었지. 그런데 웃긴 거야. 지 어미 일 할 때는 한 번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아들놈이, 지 마누라 일하고 있으니까 얼쩡거리잖아.
며느리가 말하면, 아들놈은 18개월 된 점박이 발바리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말 듣데. 속도 없는 놈. 진짜.
“자기야 상 좀 펴 줘”
“어. 그래.”
"상도 좀 닦고, 젓가락도 좀 놔"
"응."
아들도 시키면 일 할 줄 알더라고. 나 처음 알았네?
“자기야. 이거 상에 좀 놔 줘”
“어, 알았어.”
하는 꼴이 아주 죽이 착착 맞더라고. 그래 이제 남자도 집안일해야지. 가서 도와줘야지. 알기는 하는데, 며느리가 아들 시키는 거 보고 있으니까 입이 쓴 거야. 나는 평생 남편이고, 아들이고 시킬 생각 못했는데…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러니까, 내 말이. 시키면 하더라니까. 말 마. 그래. 아들이 변했어 결혼하고 변했다니까?
엊그제는 어쨌는지 알아?
시아버지 생신이라고 같이 식사하자고 며느리한테 전화 왔더라고. 사실은 얼마 전에 둘째 손자 돌이라 그때 밥 같이 먹고 잊어버렸었거든. 근데 큰며느리가 전화한 거야. 이쁘도 안한 남편 나도 챙기는 거 깜빡했지.
큰아들? 그러니까 결혼한 지 5년 되었지 아마? 응 그랬다. 5년째네… 아직 좋을 때지.
하여튼 계속 들어봐. 같이 고기나 먹자고 해서 삼겹살 먹으러 갔어.
우리 남편이 며느리 들이고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아주 며느리랑 쿵짝이 맞아서 술 한 잔씩 하는 거야. 참 내. 그날도 그랬지.
“아버님. 쏘맥 하시지요? 콜?”
며느리의 말에 또 벙실벙실하는 모습이지 뭐야. 둘이 아주 주거니 받거니 신났어. 아주 신났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참 웃긴 거야.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둘이 커플로 팔에다 뭘 했더라고.
우리 큰 아들 이때까지 반지나 목걸이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좋아하지도 않고. 지 얼굴에 로션도 잘 안 바르고 다니는 놈이 무슨 액세서리야. 그런데 보니까 지 아내랑 둘이 똑같은 걸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보니까 둘이 노란색 팔찌더라고. 영어로 뭐라 써져있는데 그건 잘 못 봤고, 숫자 써져있더라.
0416인가 그랬어.
그래 아직 젊지… 젊어. 그런 거 팔찌 똑같이 하고 다니기도 하고….
그러니까. 변했다니까? 어 그래. 우리 오늘 별로 말도 못했네.
다음에 좀 길게 통화하게. 어. 그래 들어가.
어머니는 나와 아내가 동시에 하고 있는 노란 세월호 밴드가 커플이라 똑같이 하고 있는 줄 아셨던 모양이다.
세월호 배지나 밴드나 이런 거 모르시는 어머니께는 이미 지나간 기억이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는 그렇게 우셨지만, 3년이 지나는 동안 어느새 까맣게 잊으신 거다.
때로 삶은 잊고 싶지 않은 것마저도 망각하게 만든다.
아내와 내가 밴드를 하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아직 세월호 안에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세월호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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