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19
“아들, 일어나. 아빠랑 오늘부터 약수터 간다며”
괜히 말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어젯밤에 초등학생들 소아비만이 심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거실에 누워 휴대폰으로 ‘드래곤 빌리지’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내게는 재앙이었다. 그 뉴스가 나오자마자 엄마, 아빠, 누나는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안다. 나 뚱뚱하다. 키 145cm, 몸무게 59kg 소아비만 김영민. 그게 나다. 그래도 우리 반에 나보다 뚱뚱한 애들이 4명은 더 있다.
“뭐. 왜? 나… 나도 운동할 거라고.”
“누가? 니가? 운동을? 지~인짜?”
저럴 때는 누나를 때리고 싶다. 입꼬리를 오른쪽으로 올리고 고개를 살짝 꺾어서 이죽거리는 모습이 너무 약이 오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결코 누나에게 달려들 수 없다. 옆에 엄마, 아빠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누나 무섭다. 누나는 5학년 때부터 킥복싱을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전에 누나에게 덤볐다가 로우킥으로 허벅지를 맞았는데 피멍 들었다. 엄마한테 이르면 반대편도 똑같이 만들어주겠다는 누나의 엄포에 난 끽소리도 할 수 없었다.
“어이구. 우리 아들. 그럼 내일부터 아빠랑 아침에 약수터 가면 되겠구나? 그렇지?”
아빠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아빠, 쟤가 일어날 것 같아요? 저 뚱민이가? 푸하하하.”
“아 됐다고! 누나 내가 일어난다고오! 봐봐 내가 일어나서 운동 간다고!”
내가 비록 누나와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웃음을 참고 넘길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 내가 내일 일어나서 꼭 아빠랑 운동 갈 테니까 운동복 준비해주세요. 누나 넌 보라고. 내가 운동 가는지 안 가는지.”
“눼에~눼에~ 그러시겠지요. 우리 뚱민이가 운동을 가시겠지요~~”
아, 진짜. 누나 한 대만,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약 오르고 억울하고 속이 상해서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
“김하늘. 너도 그만해. 동생 속상하게 왜 그래. 그래, 영민아 엄마가 운동복 준비해줄게. 알았지?”
자존심과 바꾼 아침잠을 포기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에이 씨.
“뚱미니~ 뚱미니~ 뚱미니~”
아 진짜. 평소 누나도 늦잠 자는데, 저거 나 운동 안 가면 놀리겠다는 기어이 일어나서 저러는 거다. 진짜 우리 누나지만 대단하다.
“야, 간다. 가! 일어났다고!”
누나를 향해 소리를 빽 지르고,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는 이미 준비하고 계셨고, 누나는 잠옷 차림으로 순전히 내가 나가는 걸 지켜보며 끝까지 놀리겠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진짜 못됐다.
우리 동네 뒤쪽에는 ‘금당산’이라고 작은 산이 있다. 예전에 아빠는 거기서 물을 떠 오시고는 했지만, 요즘은 집에 정수기가 있어서 그러지는 않는다. 지난여름에 약수터 수질검사에서 대장 균이 나오기도 했다는 말도 있었다. 아빠를 따라 터덜터덜 약수터 올라가는 입구까지만 왔는데도 벌써 힘이 들었다.
“뚱민… 아니, 영민아.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면 안 되니까 중간에 도저히 못 올라가겠으면 말해. 알았지?”
“허억…. 허억…. 허억….”
아빠의 말에 화가 울컥 날 뻔했지만, 숨이 너무 차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나섰으니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숨을 크게 들이쉬었더니 좀 나아졌다.
“허억...허헉… 흐으으읍… 피휴우우우… 아빠. 가.. 가요. 허억… 계속… 가요.”
“그래. 일단 가보자.”
아빠를 따라서 약수터로 가는 계단을 따라 오르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무거워졌다. 땀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그대로 주저앉고 싶어 졌다.
“아… 아빠, 잠깐만요. 허억. 나… 좀 쉬어요.”
길 옆으로 빠져나와 허리를 숙여 나무에 손을 얹고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힘들어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땀이 이마를 따라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진짜 어제 조금만 더 참을걸…
한참을 쉬다가 허리를 막 펴려는 순간 나무 아래 떨어진 빨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종이에는 ‘미국은 민심의 버림을 받은 대결광신자들을 부추겨 분열을 지속화하려는 교활한 민족이 간 술책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쓰여 있었다.
“아빠. 여기 이상한 종이가 떨어져 있어요.”
“응? 그것이 뭐냐? 가만 보자. 삐라네. 이런 게 아직도 돌아다니네. 야. 진짜 역사가 거꾸로 가기는 했구나. 버려라.”
“삐라? 그게 뭔데요?”
“아빠 어렸을 때, 북한에서 막 보내는 광고지야. 집 문 앞에 중국집 광고지 붙지? 그런 거야.”
“그럼 이거 북한에서 온 거예요?”
“글쎄다. 그냥 버리고, 다 쉬었으면 가자.”
“네.”
막 삐라를 버리려 했는데,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종이 끝에 인터넷 주소로 보이는 것이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갑자기 호기심이 불쑥 올라왔다. 도대체 저 주소는 뭘까?
얼른 종이를 접어 바지춤에 넣었다. 머릿속에는 얼른 집에 가서 컴퓨터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생각만 하다 보니 힘든지도 모르게 약수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올~ 뚱미니~ 대단한데? 힘들다고 울지는 않았어?”
누나는 아빠가 샤워하러 들어가자 바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됐어. 이 마녀야!”
“뭐?”
내 대답에 누나가 정색하더니 갑자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어깨를 걸어 내 목을 감아쥐더니 귀 옆에 조용히 말했다.
“뚱미니… 마지까?”
“아악. 자... 자...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누님.”
“좋아. 한 번 봐준다.”
누나는 내 목을 풀어줬다. 그리고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왔다.
“자. 마셔. 목마르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위해 나님이 내리는 딸기 스무디다. 고맙지?”
“우와. 누나 고마워. 진짜 최고야.”
나는 딸기 스무디 안 좋아한다. 저건 누나 취향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2시간은 괴롭힐 거다. 딸기 씨앗이 텁텁하게 넘어가는 느낌이었지만 꿀꺽꿀꺽 넘겼다.
“누나. 진짜 맛있다. 최고야!!”
아빠가 나오시자 나도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는데 빨간 삐라가 삐죽 보였다. 누가 볼까 얼른 수건 사이에 숨겼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주소가 어디로 연결될지 궁금했다.
씻고, 밥 먹고 아빠와 엄마는 누구 결혼식 가시고, 누나는 친구 만나러 나갔다. 드디어 집에 혼자 남았다. 아까 욕실 수건 틈에 넣어 두었던 삐라를 가지고 나왔다.
거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브라우저를 열고 삐라에 나와있는 주소를 쳤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검게 변했다. 컴퓨터 팬이 위이이잉하고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아.. 이거 뭐야. 이상한 건가? 바이러스인가?”
순간 겁이 났다. 그때 화면 한가운데 검붉은 점이 찍혔다. 아니 더 정확히는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큰 도장이 쿠욱 찍혔다. 영화에서 밀랍으로 봉인하는 장면하고 똑같았다. 이윽고 화면이 사선으로 갈라지더니 천천히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HGXWCH이라는 사람은 1930년에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서에게 복사해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에 복권이 당첨되어 20억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 편지를 받았으나 96시간 이내 자신의 손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는 곧 사직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7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다시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 편지를 받았지만 그냥 버렸습니다. 결국 9일 후 그는 암살당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편지를 보내면 7년의 행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3년의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버리거나 낙서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7통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7년의 행운을 빌면서....."
아빠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 진짜 역사가 거꾸로 가기는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