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 없다

100개의 글쓰기 20

by 김민성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들어오는 길에 자기 책 15권을 챙기고 마트에 들러 키친타월과 화장지를 사 오라 했다.
또한, 반찬이 없으니 장 봐서 소시지와 양파라도 사 오면 볶아주겠다고도 했다. 순간 울컥 짜증이 났다.

저걸 다 들고 가는 것은 무리다. 키친타월과 화장지 36 롤은 무게보다 부피가 문제다. 지가 들지 않으니 별생각 없이 다 가져오라 문자 넣은 거다. 일단 시킨 일이니 할 수밖에 없다.

책 15권을 챙겼고, 마트에서 키친타월과 화장지를 샀다. 생각했던 것처럼 장을 보는 것은 무리다. 그냥 포기하고 양손에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 서는데 이 여자가 안 보인다.
신발을 벗으며 혹시 화장실에 있나 싶어 찾아보는데 없다.
밤 시간이라 운동 갈리도 없고 이상하다 싶은 그 순간, '장난치려고 숨었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짐을 놓고 베란다 쪽으로 가보자 하고 바닥에 놓으려 몸을 숙이는데...
왼쪽 사각 지역에서 극도로 웃음을 참는 숨소리가 들렸다.


섬찟하려는 순간이었는데 웃음 참는 그 숨소리 때문에 놀랠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머릿속에 순식간에 지금 상황이 정리됐다.

아내 임지형은 남편 김 매니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놀라게 하려고 입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역으로 숨었다. 오직 깜놀을 안겨주겠다는 일념으로 평소 그 싫어하는 주방 쓰레기통 옆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내가 눈치 못 채게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고, 내가 자신을 발견 못하자 작전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에 너무 좋았는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 내면 안되니 이 악물고 참기는 하는데 흥분된 숨소리마저 참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하아... 놀래 줘야 하나? 아니다. 그럼 버릇된다.)

그냥 못 본 척했다. 전문용어로 쌩깠다.
무표정하게 짐 놓고 그대로 몸 돌려 작은 방으로 가서 옷 갈아입었다.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 잔뜩 준비하고 있던 지형씨는 내 반응이 기대와 달랐는지 실망과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야!!!!!!!"

씨익~ 지금이다. 악센트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투로 말해야 한다.

"엇! 자기 거기 있었어? 어머 깜짝이야.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네. 아유 놀래라. 정말 놀랬다."

지형씨 인상이 찌그러든다.

"아 됐어! 아 진짜! 짜증!"

아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사실 숨소리가 조금만 작았다면, 그리고 내가 1초만 늦게 눈치챘으면
정말 크게 놀랐을 거다.

실망한 아내를 보고 다짐했다.
다음번에는 완전 놀래 줘야겠다고... 놀래는 연습을 해야겠다.


앗~ 깜짝이야!

엇~ 깜짝이야!!

어머나...

으헉!! 엄마야!!

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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