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0개의 글쓰기 21

by 김민성

사무실 앞 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근처 공단이나 사무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갔을 시간이다.


새벽 3시경 박근혜는 구속되었다.

이른 아침에 자다 깬 아내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박근혜 구속 뉴스를 봤던 모양이다.

“아하하하하… 워메~ 좋은그~”

그리곤 도로 잔다. 아내 기상시간이 되려면 1시간은 남아있었다.


먼저 일어나 커뮤니티나 뉴스를 통해 밤사이 일어난 일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페북에 잡담을 좀 쓰고, 낄낄거리고 나서 커피 끓여 막 일어난 아내에게 주었다.

‘오 해피 데이’를 틀어놓고 아내는 몸을 흔들었다. 누군가는 박근혜 구속이 슬픈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고 기쁜 일이다.


사무실 나왔는데 일이 잘 되지 않는다. 계속 뉴스 뒤지고, 딴짓한다.

어제 하던 작업을 계속하려고 베가스를 띄워놓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한 형님들과 일본 간다는 잡담과 꽤 유용한 정보를 얻고, 좋아했다.


전화를 끊고 일을 하려는데 집중도 안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문득 시계를 보니까 2시가 넘었다. 뒤늦게 허기가 몰려온다.


“사장님, 밥 주세요~”


내가 가서 5천 원 찍고, 영수증 정리해서 함에 넣어놓고, 카운터에 널린 식권 정리해서 옆에 놔둔다.

넓고 둥근 접시에 밥, 김치, 파김치, 제육볶음을 담는다. 오늘 특별 메뉴는 칼국수다.

설거지거리를 들고 가던 사장님이 웃으며 그러신다.


“잔치 국수 할라고 했는디, 그건 국수가 퍼져븐께, 칼국수 해브렀어. 이상하게 오늘 먹고 싶드라고…”


그러게 말이다. 하필 오늘 잔치 국수가 당기셨을까… 참 공교롭다.

피식 웃고 국그릇에 잔뜩 담았다. 그래, 칼국수를 잔치국수처럼 먹어주자.


YTN이 틀어져 있었다.

앵커는 상기된 목소리로 방송 중이었다. 세월호가 돌아오고 있단다. 바닷속에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반잠수정에 올라와 있는 지금은 급히 부식이 진행되고 있단다. 일부 작업할 공간에는 뻘이 무릎까지 차 있어서 제거작업도 해야 한단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메었다. 난 그다지 감성적인 사람 아니다. 숨 크게 들이쉬고 꿀꺽하고 눌러 삼켰다.

TV 화면에는 녹이 슨 세월호가 보인다. 거대한 반잠수식 선박 위에 가로 눕혀진 모습 보니까 눈이 아프다. 씹고 있는 쌀알이 모래알 같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명치끝이 따끔거린다.

난 그다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무덤덤하게 저걸 볼 수 있다.


훌륭한 YTN 방송국에서는 세월호를 옮기고 있는 반잠수정의 크기와 속도를 열심히 설명해준다. 또한 목포신항에 도착하면 진행될 작업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동하기 위해 고정한 용접 부위를 잘라내고, 배수 작업과 선내의 유류제거 작업도 할 거란다. 하역을 위해 특수 운송 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트를 세월호 아래로 집어넣어 이동하는 작업을 할 거란다. 관련 전문가가 나와 작업에 대해,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열심히 떠든다.

진즉 들어올 수 있었던 저 배가, 박근혜 구속된 날 들어와서 하루 종일 뉴스에 나온다.


나는 반잠수정의 크기와 속도와 이동 방식은 궁금하지 않다. 모듈 트랜스포트가 유압식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에게 왜 그래야 했는지가 궁금하다. 이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왜 그 오랜 시간 작업을 질질 끌고 덮어놓았지가 궁금하다. 자기 목숨 아끼지 않고 아이들 데리러 물속으로 들어간 잠수사들에게는 또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과연 세월호가 지금 돌아올 수 었을까 궁금하다. 가슴 찢어지는 가족들에게 대통령은 왜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가 궁금하다.


밥을 열심히 씹는데 두 숟가락 남기고 더는 못 먹겠다.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면 반도 못 먹었겠지…

무신경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2017년 3월 31일 박근혜가 구속된 날이다.

그리고 1080일 만에 세월호가 돌아온 날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