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채기

100개의 글쓰기_2

by 김민성


“푸에취!”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저 재채기다. 아내는 내가 재채기를 크게 하면 시끄럽다며 나무란다. 한 번은 ‘큰 용기'를 내어 항변했다. ‘야, 내가 하기 싫다고 재채기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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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만히 보던 아내는 웃기 시작한다. 나는 잔뜩 벼르고 꺼낸 이야긴데, 지는 씩씩거리는 내가 웃겼던 모양이다. 한참을 웃더니 미안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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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진 곳이나 건물 안에 있다가 햇빛이 쨍한 곳으로 나오면 이상하게 재채기가 나온다. 어릴 때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략 처음 기억하는 것은 22살 정도였다. 그때가 아마 내 기억에 뒤늦게 찾아온 ‘자유의 열병이라 말하고 중2병이라 할 수밖에 없는 지랄’을 한 참 하고 있었을 때였다. 집에다가는 학교 기숙사에서 산다고 말하고 사실은 학교 신문사 암실에서 도둑 생활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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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신학생이라도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탈은 없었고, 수업 다 듣고 끽해야 만화 대본소에서 종일권을 끊어 늦게까지 황성, 야설록, 박봉성, 고행석 만화를 봤고 김용의 의천도룡기, 사조영웅전, 녹정기, 소오강호 같은 걸 읽었고, pc통신의 영향으로 한참 뜨기 시작한 신무협 작품도 많이 읽었다. 용대운의 유성검, 권왕, 도왕, 검왕, 태극문 같은 작품을 읽으며 빠져들다가 좌백의 대도오와 생사박은 충격이었고, 이영도의 드래곤라자나 이우혁의 퇴마록, 이경영의 가즈 나이트 같은 판타지도 열심히 읽었다. 학교에선 중세철학 사니, 구약신학이니 하는 것을 배웠으니 어떤 면에서는 일맥상통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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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의 햇빛 볼 일 없이 반 두더지같이 살았다. 당시 내가 갔던 대본소가 지하에 있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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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재채기를 시작했다. 햇빛 꽤 잘 드는 운동장을 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푸에취!’하고 연달아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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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신문사 선배에게 빌려 입은 퀴퀴한 군대 야상 때문이라 생각했다. 며칠 후 또 재채기가 났을 때는 감기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가면 재채기가 튀어나온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역시 나는 밝은 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중2병의 정점을 찍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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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추석 무렵이었을 거다. 효자임에 틀림없는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묘'를 가야만 했다. 겨우 읍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조상님들의 묘소가 다 흩어져 있었던 관계로 우리 집의 성묘는 무척 하드 했다. 어떻게 안 가볼 생각으로 뭉기적거리면 어김없는 아버지의 질책이 따랐고, 도살장 끌려가는 누렁이 소마냥 끌려서 성묘 가야 했다.


집에 있다가 아버지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한가위 가을 햇살은 무척 쨍했고, 하늘은 파랬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재채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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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취!!!’
‘우이취!!!!’
‘흐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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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맞구나. 그래. 남들이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는 말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데… 인정해야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망상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연신 재채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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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에버렛이라는 의사에 의해 명명된 ‘광반사 재채기(photic sneeze reflex)’가 아버지와 나의 증상이었다. 눅눅한 야상 때문도, 감기 기운 때문도 아닌 유전 때문이란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받았고, 할아버지는 또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옛날 옛적부터 받아왔을 유전자 때문이었다.



1991년 멘체스터 대학의 병리학자 벤보우는 자신도 이런 증상이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는 아주 사소하지만 갑작스러운 환경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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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서 낮 경기에 나선 야구 외야수는 재채기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위험할 수 있단다.
나는 야구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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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외에서 외줄 타기 공연을 하는 광대도 재채기 때문에 줄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난 높은 곳이 싫다. 위험한 일을 굳이 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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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운전할 때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재채기가 튀어나오면 짧은 순간이지만 주변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아…. 이건 위험하다. 해남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낮 운전도 자주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하나 사기로 했다.
이 글을 쓴 이유다.
여보 장바구니에 넣어놨어… 카드 결제해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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