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와 진상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남편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가
엊그제. 작가님들 만나서 과음하고 돌아오신 임작갑.
이미 현관 비밀번호 누를 때부터 진상의 기운이 느껴진다.
평소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삑 삑 삐 삑 또로롱~ 찰각”이었다면.
진상인 날은
“푸후우.”
삑
“딸꾹.”
삑 뽁.
“웅얼웅얼.”
삑. 띠 띠 띠. 덜컥.
“뭐야 왜 안 열려. 신발. 아이 이거 왜 이르는 그야. 다시.”
삑. 삑.
“휘유우우우.”
삐……...삑. 또로롱.
“열렸다아.”
저 소리를 방에서 듣고 있으면,
현관 방범 고리를 걸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이만팔천사백스물여섯번은 하게 된다.
낄낄.
진상 임작갑님의 품위 유지를 위해
더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내가 커피를 내리고, 아침 루틴을 하는 동안.
임작갑은 당연히 못 일어나다가
한참 후에 겨우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기침하셨다.
그러더니 상당히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그런다.
“김매니저. 나 머리가 너무 아파.
혹시 어제 내가 자기한테 진상 피웠어?
아니지? 그러지 않았지?
속이 너무 쓰려. 으윽.
꿀물이 좀 땡기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아. 어제 자기가 밖에다가 뭐 흘리고 와서
내가 그거 찾아오느라 힘들었던 것만 빼면
크게 뭔 일은 없었어.”
“뭐? 내가 뭘 놓고 왔었어? 핸드폰?
가방? 아닌데. 다 가지고 왔는데.”
“아냐. 너 닝겐성과 개념과 양심을 흘리고 왔더라고.
아조 구멍 나고 시꺼먼 것이 알콜로도 소독이
안 되는 모양이던데?”
“마지까?”
“옛따 꿀물이나 마셔라.”
임작갑은 넙죽 꿀물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꿀물이 싱겁다며 투덜거려서,
꿀 두 스푼을 더 넣어 드리고 나서야 만족하셨다.
그렇지 진정한 진상은 질척거림이 포함되어야 완성되지.
“임작갑. 내가 생각을 해봤어.”
“으으. 뭔데?”
“내가 우리 아버지 꿀물도 타 본 적이 없거든?
결혼하고 아내 꿀물 탈 거라고 누가 알았겠냐.”
내 말이 끝나자 뒤늦게 양심과 개념이 꿀물의 효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임작갑은 한 0.3초쯤
민망해하다가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러더니 이내 기세를 회복해서 그런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챙기시겠지.
그러니까 자기는 걱정하지 말고 나만 챙겨 줘. 응?
알았지. 이게 다 나랑 결혼한 업보라고 생각해.
오케이?”
임작갑에게
닝겐성과 개념과 양심은 옵션사항이지만,
저 당당하게 뻔뻔함은 그냥 빌트인인 모양이다.
혀를 차면서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낮고 확고한 열망에 찬
진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심에는 김치 콩나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