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26
“아빠, 일어나~ 일어나아~~”
일요일 아침. 난 아버지를 애타게 깨웠다. 토요일 저녁 동료들과 한잔 하고 벌게진 얼굴로 과자 봉지를 사들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여전히 술냄새가 많이 났다. 조금 더 주무시고 싶으실 거다. 그럼에도 나는 필사적으로 깨워야 한다. 반드시!
“아빠아아아~~ 일어나라고요~~”
지금 깨우지 못하면 재앙이다. 지난번에 엄마에게 안 간다고 버티다 등짝을 맞고 끌려갔을 때 내 앞에 앉은 여자애를 만났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금성 원색 학습 도감 인체 편을 통해 여자와 남자의 몸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왼쪽에 남자, 오른쪽에 여자의 적나라한 몸과 신체 기관이 그려진 것을 보았다. 난 깨달았다. 더 이상 내가 이전의 순수한 ‘민성’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렇다. 사람은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자는 분홍 분홍 하고, 좋은 냄새가 나며, 다정하고 세심했다. 남자는 거뭇거뭇하고, 짙은 담배냄새나 술냄새가 나고, 무뚝뚝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남자는 남자 목욕탕에, 여자는 여자 목욕탕에 가야 했다. 남자는 남탕! 여자는 여탕!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엄마는 그리 무시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게다가 엄마에게 끌려가면 목욕탕에서 최소 2-3시간은 보내야 했다. 안 간다고 버텨도 일단 등짝을 맞고 질질 끌려가게 된다. 목욕탕 아줌마에게는 이미 국민학교 1학년인데도 아직 7살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강제로 옷이 벗겨져, 현기증이 날 때까지 뜨거운 물에 몸을 불려져야 했고 손이 쭈글쭈글 해지도록 물에 불려지면 저쪽에 자리 잡은 엄마가 부르셨다.
“나와!”
그리고는 검은색 선이 2개 들어간 초록색 이태리타월로 피부가 한 꺼풀 벗겨지는 고통을 받으며 벅벅 문질러져야 했다. 고문이었다.
게다가 내 목욕이 끝난다고 일이 다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목욕탕에서 빨래까지 하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고, 버티다 못해 먼저 나가서 옷을 입고 집에 가겠다는 내 주장은 일고에 기각되었다.
그렇다 아빠를 깨우지 못하면 저 꼴을 또 당해야 했다.
다행히 아빠는 일어나셨다.
“민성이 데리고 목욕 갔다 와요. 때 박박 밀어주고요. 그리고 과자 사주지 마요.”
엄마는 기다란 목욕가방에 타월이며, 면도기며, 샴푸 같은 것을 챙겨주셨다. 난 행여나 엄마랑 가게 될까 이미 마당에 나와서 아빠를 기다렸다. 어지간하면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뭘 하는 일은 없었다.
집 앞 골목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하천길을 따라 올라갔다. 건너편 매일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오물들 때문에 하천은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여탕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았다. 작은 다리를 건너 시장통을 지나면 전봇대를 끼고 작은 담배가게가 있었다. 아버지는 잠시 서서 겨드랑이에 목욕가방을 끼고 솔담배 한 갑을 사셨다. 덕분에 나는 분홍색 알갱이가 촤륵거리는 껌 한통을 얻었고, 우리는 이 일을 비밀로 했다.
술이 덜 깨 머리가 아픈 아버지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바지 품을 뒤적거리신다. 그리고는 날개 달린 말이 그려진 작은 성냥갑을 꺼내드셨다. 인상을 잔뜩 쓰고, 대수롭지 않게 성냥갑을 밀어 짙은 주황색 황이 묻은 성냥개비를 꺼내 ‘탁, 탁’ 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빨갛게 불이 오르는 담뱃불, 매캐한 탄 냄새를 따라 아빠를 보면 깊이 들이마셨던 숨을 피유우 하고 내쉬었다.
남자다. 그때 내가 기억하는 남자 냄새였다.
다시 아버지를 따라 양복집과 선술집, 쌀가게를 지나면 오래된 온천표시가 그려진 금강탕이 나왔다.
자랑스럽게 ‘남탕’이라고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빠가 사장님과 눈인사를 하고, 값을 치르는 동안 나는 7이라고 써진 나무 조각이 달린 넙적한 키를 받아 들고 얼른 꽂아 보고 싶어 안달을 냈다. 키를 꽂아 넣으면 나는 ‘잘칵!’ 소리가 너무 좋았다. 최소 열댓 번은 해봤다.
엄마와 달리 아버지와의 목욕은 늘 흥미진진했다. 아버지께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어어~’하고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도 그 옆에 앉으면 된다. 곧 몸이 뜨거워지면 바가지 하나 들고 냉탕으로 들어가 잠수하고 물장구치다가, 추워지면 다시 온탕으로 들어가 아빠 앞에 슬슬 돌아다닌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빠는 이제 됐다며 데리고 나가 때를 밀어주셨다. 분명 엄마보다 아빠가 힘이 센데도, 아빠가 밀면 참을만했다. 시원하기까지 했다. 샴푸로 북북 머리까지 감겨주면 내 차례였다. 아빠가 돌아 앉으시면 넓은 등을 밀어드렸다. 힘을 다해 열심히 등을 밀면 아버지가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다 컸다고 하셨다.
사실은 아빠랑 목욕 오면 저 말이 참 좋았다. 다 컸다. 남자다…
아빠 등을 밀어드리고, 나머지는 당신이 때를 미는 동안 나는 다시 바가지 두 개를 붙여서 냉탕에서 수영했다. 추워지면 다시 온탕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왔다 갔다 놀다 보면, 아빠가 일어서셨다.
“가자.”
탕 밖으로 나와 대기실로 가면 아빠는 수건 하나를 목에 걸고 다른 하나를 들어 내 몸을 닦아 주셨다. 그리고 당신 몸을 닦은 후 수건을 허리에 감으시고, 하나를 더 들어 길게 잡고 머리를 털어 말리셨다.
경쾌하게 ‘투다투다투다투다닥’하는 소리를 내며 자연스럽게 거울 앞으로 걸어가 선풍기를 켜고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해 보지만 쉽지 않다.
‘두닥 틱’ ‘두닥 틱’하며 내 큰 머리에 걸려 힘 없이 늘어지는 수건을 보며 다음에는 아빠처럼 리듬감 있게 머리를 말릴 거라 다짐할 뿐이다.
그때 내게 남자는 드라이기 따위 쓰지 않고 수건만으로 경쾌하게 머리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덕분에 지금도 난 드라이기에 익숙하지 않다.
옷을 다 입고 목욕탕 앞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빙그레에서 나온 노란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마신다.
당연히 이것도 엄마에게는 비밀이다.
목욕탕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눈이 부신다. 일요일 늦은 아침에 떠있는 해는 유난히 밝았다.
집에 오면 엄마는 국수를 끓여주고는 하셨다.
마침 딱 배고픈 시간.
그냥 흰 국수에 노란 설탕 2숟가락 넣고 찬 물 부어 후루룩 먹는 국수는 달고 시원했다.
마루에 누워 마당에 쏟아지는 오후의 햇볕을 보고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버지랑 목욕 간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이번에 명절 전에 벌초 도와드리러 가서 등 밀어드려야겠다.
아직 아버지가 계셔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