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25
어릴 적 유치원 놀이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그네와 미끄럼틀이었다. 미끄럼틀은 차례대로 기다렸다 내려오면 되는 일이라 금방금방 순서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네는 쉽게 순서가 돌아오지도 않았고, 오래 탈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놀이터에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혼자 놀이터를 독점하고 놀 수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노란 유치원 가방을 미끄럼틀 기둥 아래 놓아두고 혼자서 질릴 때까지 미끄럼틀을 탔다. 아무도 없는 모래판에 주저앉아 아빠 두꺼비, 엄마 두꺼비, 아이들 두꺼비 사는 두꺼비집을 줄줄이 만들었다. 봄볕에 얼굴이 빨갛게 되는지도 모르고, 엄마가 입혀준 하얀 스타킹이 모래투성이가 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그렇게 한참을 혼자 놀다가 드디어 '그네'가 눈에 들어왔다.
구릿빛 쇠사슬 줄에 반질반질한 오래된 나무 발판, 마침 부는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기까지... 그네에서 '샤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그네로 다가갔다. 그네 줄은 차가웠다. 두터운 쇠고리 줄을 잡고, 나무 발판에 발을 올렸다. 그네 위에 올라서자 다리가 흔들거렸다. 천천히 균형을 잡고 앞뒤로 몸을 굴렀다. 끼익 끼익 소리에 느리게 뛰던 심장이 점점 빨라졌다.
휘익하고 귀 밑을 지나가는 바람에 기분 좋아졌다.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찌릿찌릿했다. 하늘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느낌에 신이 나서 몸을 더 크게 굴렀다. 누군가가 나를 보았으면 그러다 달까지 가겠구나!라고 감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혼자 들떠 반동은 점점 커졌다. 그러다 너무 빠른 속도에 왈칵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던 것 같다. 결국 그넷줄을 잡은 손이 미끄러져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모래 알갱이가 입에 들어왔고, 그대로 바닥에 굴러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왜 그네를 탔는지 깊은 후회가 밀려왔고, 눈물이 나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프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혼자 여기 던져져 있는데,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같은 외로움이 커서 난 눈물이었다.
그냥 '어... 어... 어...'하는 낮은 흐느낌으로 한참을 그렇게 바닥에 누워서 울었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픈 것도 덜해지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몸에 힘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났다.
침을 퉤! 뱉어버리고, 온몸에 붙은 모래와 흙을 툴툴 털었다. 오른쪽 흰 스타킹에 구멍이 나서 무릎이 까져 피가 번져있었다. 히끅 눈물이 나려 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꿀꺽 눈물을 삼켰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미끄럼틀 아래 놓았던 노란 유치원 가방은 햇살을 받아 뜨끈했다. 가방을 가로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또 그 와중에 땅에 난 풀이며, 노란 개나리며, 줄지어가는 개미까지 일일이 다 간섭했다.
당연히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되게 혼났다. 마침 집에 놀러 왔던 친척 누나가 나를 씻겨 줬다. 누나는 나를 다씻낀 후 하얀 팬티만 입혀놓고, 머리에 꽃삔을 꽂아놓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렸다.
엄마는 흑백텔레비전 다이 아래서 약상자를 꺼내오셨다. 그리고 큰아들 앉혀놓고 타박하면서 빨간 아까징끼를 북북 발라주셨다. 또 눈물이 났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나는 아팠는데 속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했다. 속없는 친척 누나는 운다고 놀렸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나는 그네를 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국민하교 다니면서도 그네 타고 논 기억은 별로 없다. 남 타는 거 밀어주고 구경한 기억은 꽤 남아있다.
어릴 때의 이런 기억은 평생 가는 모양이다.
그런 거다 그래서
나는 503번 박그네를 싫어한다.
응? ㅡㅡ;;;
뭐 쓰다가 갑자기 아재 개그로 마무리하고 싶어 졌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