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38
개미가 기어간다. 끊임없이 더듬이를 움직이며 어디론가 바삐 이동한다. 검고 윤기 나는 단단한 갑주를 입고 정글 같은 풀밭을 행군하고 있다.
딱히 개미들을 들여다볼 계획은 없었다. 그저 아내가 오전에 작가 초청 강연이 있어 차로 태워다 주고,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엔 얌전히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곧 지루해졌다. 차 밖으로 나와 초등학교 운동장 옆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파란색 연습장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다가 테이블 위까지 기어올라온 개미 한 마리를 만났다. 아마 척후 개미일 거다. 먹이라도 발견하면 이내 돌아가 위치를 알려주고 동료들을 데려오겠지.
테이블 아래를 보니 바쁜 개미들이 보였다. 도무지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듯 바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의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는 것은 부러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렸다. 개미는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릴 때라면 이 타이밍에 더듬이를 떼어내거나, 다리 한쪽을 떼서 바닥에 놓고 빙글빙글 도는 것을 지켜봤을 거다. '아이들의 잔인함'이라고 표현되는 그런 모습이 내게도 있었다.
손에서 벗어나려는지 열심히 움직이자 손을 빙글 돌려버렸다. 열심히 앞으로 가던 개미가 처음 출발했던 손바닥 위치로 되돌아왔다.
더듬이를 흔들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녀석을 보며 나보다 거대한 누군가가 지금 나를 보고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다는 망상을 해본다. 사람도 사실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져,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바삐 움직여햐 한다. 멈춰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부지런히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빙글 도는 것 같더니 제자리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면 참 허탈하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개미처럼 단단한 갑주로 스스로를 무장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일개미처럼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기도 하고, 병정개미처럼 용감해서 새로운 일을 하는데 두려움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잇기도 하며, 수개미처럼 일생의 화려한 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호기심 가득해서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들은 어지간한 일로는 상처받지 않는다. 스스로 둘러 입은 검고 윤기 나는 갑주로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지 않는 내게는 신기하기도 하고, 적당히 편한 좋은 사람들이다.
처음엔 이들을 부러워했다. 사람을 향해 다가가는데 두려움 없어 보이는 모습에 늘 감탄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이들도 쉽게 상처받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아파한다. 그리고 꽤 큰 상처도 흉터로 남으면 그럭저럭 버티는 나와는 달리 일정 이상의 상처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사실 그랬다. 그 단단해 보이는 갑주도 만능은 아닌지라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거나 금이 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사람의 타이밍이라는 것이 또 참 공교롭다. 바로 그렇게 약해진 순간 평소라면 웃고 넘겼을 말이나 충분히 버텼을 일이 더 큰 상처가 되어버린다. 마모되어 약해진 부분, 금 가거나 깨진 그 작은 틈으로 날카로운 말의 칼날에 깊은 상처를 입어버리는 거다.
차라리 쉽게 상처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물어 흉터로 남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흉터는 한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지금은 괜찮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들에게 어쩌면 진짜 문제는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닐까 한다. 가만히 보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또 성실하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입으로는 계속 괜찮다... 괜찮다...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의연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봐도 무척 아파 보이는데...
그리고 상처는 점점 늘어간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거나 흘려버릴 수 있는 것들이 이젠 아무런 일이 되어 괴롭게 하기 시작한다. 직장 문제, 결혼 문제, 아이 문제, 공부나 진로 문제 등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온다.
개미 이야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버렸는지 알 수 없다.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다시 손바닥으로 벌서 십 수 바퀴를 돌고 있는 척후 개미를 조심스레 땅 위에 내려놓았다.
깨진 갑주를 애써 붙잡고, 지독한 상처에 진물 흘리면서도, 지어지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어가며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당신을 응원할 뿐이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쉽기를 바랄 뿐이다. 무거운 갑주를 내려놓아도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