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100개의 글쓰기 48

by 김민성

그게 사는 건 언제나 녹녹치 않았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나 나 자신을 인식한 순간부터, 가슴 한 쪽엔 묵직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고 찾아가는 고행자까지는 아니라도, 내 삶의 마지막에 그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으면 했다. 그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나, 경험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 색꺄! 너 똑바로 안 하냐? 어? 젊은 놈이 정신을 으따가 두고 그러냐? 이라다 으디 어작나믄, 너만 좇되븐다고. 인자 일이 실실 손에 익어강께 방심했는갑다만. 아야, 그라다 뒤진다고. 알았냐?”

반장의 저 소린 사실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현장 입구에 거대하게 붙어있는 ‘무사고 현장 1182일’이라는 훈장이 떨어져 나갈까 전전긍긍해서다.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218층 초고층 건물 ‘제너시스'시공이 시작된 지 3년이다.

본사 클로나이드가 인간 복제를 상품으로 들고 나왔을 때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과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복제인간이 가진 약 16시간 분량의 기억과 경험을 싱크로 할 수 있는 기술까지 선보이면서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인간의 본체인 '네이처'가 각자 즐거운 일을 하는 동안 복제 '듀플리칸'은 온갖 재미없는 일을 시키면 되었다. 네이처가 죽지 않는 이상 듀플리컨을 통해 온갖 경험이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수십 배로 늘어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처음 집 한채 값이던 자기 복제 가격이 최고급 컴퓨터 가격까지 떨어지는 데에 1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로 빛과 그림자가 있었고, 그에 따라 복제인간에 대한 법이 재정되고, 각종 규제와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 이 13년 만에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뭐 그래 봐야 내게는 남 일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생활비가 끊겨 막막하던 그 순간, 운이 좋았는지 현장 인부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고, 인류 지식의 총아이자 집합체라고 떠들지만... 짓는 것은 노가다 십장의 지시에 따르는 밑바닥 인생들이다.

“대답 안 하냐? 쉬벌.”
“죄, 죄송합니다. 반장님. 오늘 몸이 유난히 무겁고 힘이 드네요. 조심하겠습니다.”
"인마. 그럼 처음부터 말을 해야제. 니 처음에 일 시작할 때 내가 뭐라그라디? 고향 큰성처럼 생각하라그라디야. ‘성님 오늘 나 몸이 좀 아프요' 그람 될 일인디.”
“말씀드리기가 죄송해서요.”
“그놈의 죄송은. 됐고. 끝날 시간 다 됐응께 30분 먼저 시마이하고 들어가라.”
“아... 감사합니다.”
“에잇. 새끼. 비리비리 해가꼬...”

반장의 혀차는 소리에 가슴 한 쪽이 아릿하니 뭔가 올라온다. 어쩌면 내가 반장을 잘못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걱정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생소한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그게 하필 공사장 하이바쓰고, 거친 수염에 배 나온 아저씨라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충 샤워하고, 아침에 입고 옷으로 갈아입었다. 땀에 젖은 작업복을 파란 비닐봉지에 대충 집어넣고 입구를 잘 여민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싸구려 나일론 백팩에 집어넣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몇 번 눈총 받은 후에야 내 몸과 옷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 도움은 못되도, 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지하철 입구 포장마차에서 어묵꼬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현장 함바집의 밥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늘 배가 금방 꺼진다. 일이 힘든 것도 있겠지만...


“교수님은 ‘복제 인간’이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인가요?”
“그렇지요. 클로나이드의 진짜 코어 기술은 사실 복제 인간의 기억과 경험을 동기화 시키는 부분에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영생을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듀플리컨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듀플리컨이 도망가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애초에 듀플리컨의 DNA에는 킬코드가 심어져있습니다. 듀플리컨은 네이처를 죽일 수 없지요. 또한 네이쳐와의 싱크로를 계속하지 않으면 역시 킬코드가 작동하게 되어있습니다. 킬코드는 듀플리컨의 신체 대사를 급속도로 빠르게 만들어 24시간 안에 노화를 가져오고, 완전히 분해시켜 버립니다. 흙에서 흙으로...라고 해야 할까요?”

포장마차의 미니TV에선 복제 인간에 대한 진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 무늬는 토론이지만 콜로나이드의 지원을 받은 광고나 다름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몇 개 더 먹고 싶지만 약이라도 사려면 빠듯하다. 아쉬운 마음에 국물만 들이키고, 돌아설밖에.

“인류는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에 도전하는 저들을 똑바로 보십시오! 복제인간은 사탄의 계략입니다. 제네시스는 신에 도전하는 바벨탑입니다. 인류는 그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지하철 같은 칸에 저런 광신도같은 사람이 함께 타면 피곤해진다.

“아. 씨발. 닥쳐 이 노인네야. 시끄러워 죽겠네.”


오른쪽 눈두덩에 커다란 피어싱을 박은 고등학생이었다. 녀석은 세상 모든 것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광신도에게 다가갔다.

“뭐야? 넌 애미애비도 없어? 젊은 놈이 어디 어른한테!!”
“없어. 나 애매애비 없다고. 왜? 보태줬어? 어른? 어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씨발.”
“아니.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쌍놈이 어디서?”
“뭐 씨. 봤어? 내 머리에 피가 말랐는지 안 말랐는지 봤냐고!”


피어싱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인 머리를 광신도에게 들이밀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광신도 노인은 뒤로 주춤거리더니 갑자기 어색하게 굳어버린다.

“어? 어이 노친네. 이상한데. 일로 와 봐. 뭐야? 너 복제 인간었냐?”
“무...무슨 소리냐? 난 인간이다. 네이처라고!"
“맞구만. 아 놔 미친. 어떤 변태같은 새끼가, 듀플리컨으로 꼰대짓을 하고 있어? 듀플리컨을 저주하는데 듀플리컨을 써? 저러고 밤에 싱크로돌려서 오늘 있었던 기억을 즐기고? 씨발 존나 창조적이네.”

피어싱의 어이없어하는 모습에 악다구니 쓰던 노인은 뒤를 힐끔거리며 황급히 다른 칸으로 옮겨 갔다. 피어싱은 쫓아갈까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시큰둥해지더니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졸기 시작했다. 잠시의 소란이 지나가자 지하철은 조용해졌다. 이 작은 공간에 모여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혼자나 다름없다. 그래. 이게 편한 거다.

수호고개역에서 내려 6번출구로 걸어 올라간다. 약국에 들러 감기약과 수액 팩, 주사기를 샀다. 한쪽 다리를 저는 약사는 꾸깃한 내 돈을 얼른 집어넣었다.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일을 하기 힘들어진다. 중고차 한대 값을 보증금 치르고서야 단독주택이 모인 오래된 주택가 옥탑방에 40만원 월세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이 근처는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사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날은 어둑해져서 듬성 듬성 가로등이 켜진다. 어수선한 동네라도 가로등 아래 퍼지는 은은한 빛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그대로다. 녹슨 쪽문을 열고 초록색으로 방수처리된 좁고 가파른 계단을 한 층 올랐다. 잘 잠가 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녀왔어. 하루 종일 방에서 심심했지? 아니 너야 꿈꾸고 있을 테니 괜찮으려나? 이건 내 진심인데,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어차피 그렇게 살아왔으니 말야. 오늘은 특별히 비타민 수액으로 준비해줄게. 딱히 맛이 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좀 괜찮은 꿈을 꿀지 모르지. 물론 나도 행운이라고 생각해.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 따위는 없이, 그저 하루하루 게임 따위로 보내버리던 너 같은 네이처를 만났다니 말이야. 나는 일을 시키고, 너는 하루 종일 게임 속에 살겠다는 그 얄팍한 계획으로 클로라이드에 와서 날 복제해주다니 정말 고맙지 뭐야? 보름에 요 주사기 하나로 피를 제공받는 대가로 넌 영원히 꿈을 꾸고, 나는 너 대신 고생하며 널 부양하고... 어때? 꽤 괜찮은 거래지?”

악몽이라도 꾸는지 녀석은 꿈틀거렸다. 긴 하루가 끝나간다. 앞으로 보름은 별문제 없이 더 살 수 있다. 녀석에게서 뽑아낸 뜨거운 피가 열에 들뜬 몸을 식혀 준다. 내일은 반장에게 욕 안 먹어도 되겠지...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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