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_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부터 해보려고 벼르고 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동화작가인 아내가 쓴 동화책들에 대해 정리해보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평범한 남편인 제가 평론이나 전문적인 관점에서 아내의 책들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아내가 각각의 책을 쓰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그때에 있었던 일이나 상황, 그리고 아내의 생각 같은 것을 정리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 외 그런 것 아실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볼 때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보았는데, 나중에 뒷이야기를 알게 되고, 사이드 스토리를 들은 후에 다시 그 영화를 보면 말입니다. 그전에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나 장면들이 끼워 맞춰지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되는 경우 아시지요?
여기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은 '동화작가 임지형'이 쓴 동화책들을 남편이 뒷이야기처럼 들려드리는 글이 되겠네요.
첫 번째 이야기는 아내의 첫 동화책 "진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같은 일들이 세상에는 왕왕 일어납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그런 이야기는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조금만 떨어도 '세상에 어쩌면 그런 일이 있니?'할법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를 "진짜 거짓말"로 시작하려는 이유도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제 삶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났던 2012년 전 꽤나 낙심해 있었습니다.
계획했던 일들은 모조리 틀어졌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다시 또 상처를 받는 연속이었습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 가슴 언저리에 휑하니 구멍 뚫린 얼빠진 인간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조급한 마음이 찾아왔고, 그걸 '괜찮다... 괜찮다...'하는 말로 덮어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느라 부산했습니다.
그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후배의 전화였습니다.
"형, 우리 교회 아동부 선생님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형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ㅋㅋㅋㅋ"
얼굴이 예쁘다, 성격이 좋다, 직업이 괜찮다 같은 설명이 아니라 '형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니요. 지금 생각해도 좀 특이한 소개이기는 합니다.
여튼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고, 첫 만남에서 당시 아내는 자신이 쓴 동화책이라며 '진짜 거짓말'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글은 사람을 담고 세상을 담는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1편의 단편동화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고 나가다 외로워하는 한 아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어와 단어 속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본 순간... 이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거짓말"은 그동안 제가 알던 동화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동화는 그냥 아이들이 읽을만한 교훈적 이야기, 동물이 나와 어른 대신 교훈을 주는 이야기, 작가 어렸을 때 이야기, 옛날이야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읽는 '예쁜 이야기'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동화였습니다.
'진짜 거짓말'을 읽으면서 동화가 이렇게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쉬운 단어를 사용했고, 간결하고 꾸밈없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야기가 마음속으로 거침없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표제작인 '진짜 거짓말'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오히려 '거짓말 대회'를 제안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나 나와 거짓말을 펼치고 낄낄거립니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는 진호는 도무지 거짓말할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자기 집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놓습니다. 진호에게는 참 엄혹한 현실이지만, 다른 아이들 보기엔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일 뿐이었습니다.
동화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농담이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건 한참 후의 이야기입니다만, 아내에게 이 단편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이 단편들을 단어로 말놀이 하듯 썼다고 했지요. 자기는 죽어도 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쓰겠다 하며 한편 한편 이야기를 썼다 했습니다.
"자기 만나기 전이었을 거야. 죽어도 내가 작가가 되어야겠더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있나 써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펼쳐 주욱 훑어봤어. 그러다 보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 단어가 있어. 그럼 그걸 입안에 유리구슬을 물듯이 넣고 운동하러 나갔어. 집 근처에 작은 산이 있어서 그리로 운동 다녔거든. 글 쓰려면 체력이 필수야.
운동하면서 단어를 입안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거야. 비슷한 단어랑 붙여보거나, 안 어울릴법한 단어랑 연결해보기도 하는 거지. 숨이 차고 땀이 흘러도 산을 오르며 계속 입안에서 단어를 굴리고 있으면 힘든지 몰라. 그러다가 이야기의 끝이 딱 잡힐는 거야. 그럼 희열이 느껴져. 기분이 막 좋아지지. 그럼 그 끈의 끝을 잡고 단어 위에 뼈대를 만드는 거야.
거짓말, 진짜, 진짜 거짓말, 거짓말 대회, 거짓말 같은 가난. 주인공 이름은 진호. 자 봐봐 이걸 모아서 '가난한 진호는 거짓말이 생각이 안 나서 진짜 자기 생활을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그게 거짓말 같다.'한 줄의 이야기를 만든 거야. 거기에다가 '진호가 눈을 질끈 감고 한 진짜 이야기를 들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최고의 거짓말이라고 박수까지 친다.'라고 하면... 어때? 반전까지 있는 짧은 스토리가 되지? 이렇게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심장이 두근거려, 빨리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거야.
집에 와서 잊어버리기 전에 수첩에 대략 적어놔. 그리곤 얼른 샤워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풀어나가는 거지."
자기가 이야기를 어떻게 썼는지 말해줄 때의 아내는 '작가'아니면 살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자기가 쓴 이야기 하나,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그냥 쓰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눈 마주치며 이야길 때 전해져 왔습니다. 11편의 이야기를 다 그렇게 썼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11편의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 저는 아내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겠지만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아내는 혼자 자다 깨어서 원인을 모르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몸서리쳤던 경험을 간혹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임지형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마음의 빈 곳을 어쩔 줄 모르고 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거짓말'처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해 6월 5일에 만나서 10월 6일에 결혼했으니 4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아내를 안 것은 겨우 5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느낌상은 평생 함께 있어온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제 삶에서 한 번도 곁에 없었던 적이 없는 그런 느낌입니다.
책은 청개구리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에게 인연이 있듯 출산사와 책 사이에도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인연을 매듭짓고 2017년 초에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에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아마도 작가에게 자신이 쓴 책은 자식과 같을 것입니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하겠지요.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을 통해 '진짜 거짓말'이 새 옷을 입고 독자들과 만나는 것에 아내는 설레어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더 기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특별히 좋아하게 때문이지요.
솔직히 어떻게든 아내의 책을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보고자 하는 사특한 마음과 아내가 어떤 모습과 마음으로 책을 썼는지 알기에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동화작가 임지형과 그녀가 쓴 동화책들을 눈여겨 봐주세요.라고 부탁드리려고요.
2017년 10월 지금까지 13권의 책이 나왔고, 앞으로도 또 책이 나오겠지요. 아내의 책이 나오면, 그 책을 쓰는 동안 있었던 일과 책을 쓰는 작가의 마음과 소소한 저희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드리려 합니다. 우선은 아내의 첫 책인 '진짜 거짓말'에 대한 뒷이야기였습니다.
처음 인사는 언제나 좀 어색하고 쑥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어 조금 밝게, 살짝 미소 지으며 눈을 마주하고 인사드립니다. 저는 동화작가 임지형과 함께 살고 있는 남편 김민성이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시고...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