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뚱뚱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내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이 예쁘다고 말하고 다니고, 화장하는 방법이나 꾸미는 방법을 공부하고 노력도 합니다.
“자기야 나 얼굴 어때? 이상해?”
“자기야 봐봐 오늘 눈 부었지? 이상하지?”
눈이 부었다는데 제 눈보다 두배는 크고, 얼굴이 부었다는데 제 얼굴의 반쪽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내의 질문공세에 적당히 대답해주며 속으로만 말합니다.
‘아우. 재수 없는 것!’
초등학생의 고민 중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외모 문제입니다. 아이앤북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책 “열두 살의 모나리자"는 이 외모 고민, 특히 뚱뚱함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유리는 가족 중에서 유독 뚱뚱합니다. 엄마나 언니는 날씬한데 유리만 뚱뚱합니다. 유리의 모습은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린 ‘모나리자'와 똑 닮았습니다. 그래서 별명도 모나리자 줄여서 ‘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뚱뚱한 주인공을 만들어 놓고 아내는 고심했답니다. 이야기를 위해 뚱뚱한 아이에 대해서 써야 하는데, 잘못하면 독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새 학교로 전학 간 유리. 아이들은 벌써부터 유리의 외모를 두고 수군거립니다. 때문에 유리는 더욱 위축되지요. 그럼에도 내심 유리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반에 유리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서영’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리는 서영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잔인할 수 있습니다. 서영이도 그랬습니다. 반 아이들이 유리와 서영이 중 누가 더 뚱뚱한지 숙덕거리자, 서영이는 유리가 옷 갈아입는 장면을 몰카로 찍어 SNS에 올립니다. 유리가 자신보다 더 뚱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리는 무척 큰 상처를 받습니다. 유리는 이 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합니다. 스스로 죽기로 한 것이지요.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아내는 이 장면을 쓰면서 무척 고민했습니다. 유리가 받은 상처와 충격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싶었고, 초등학생 이전에 큰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지요. 책을 읽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문제는 역시나 ‘동화'에서 ‘자살시도' 장면을 쓰는 것이 괜찮은가에 대해서였습니다. 이 부분을 세 번 이상 고쳐 썼습니다. 도저히 다루기 힘들어 빼버리기도 했고, 꿈으로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다듬고 다듬어 유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초등학생다운 모습은 그대로 두기로 했지요.
새벽에 혼자 일어난 유리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섭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지막 장소로 뒷산 약수터의 으슥한 곳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선 길인데, 공기는 참 맑고 상쾌합니다. 초록색 나뭇잎과 싱그런 자연의 기운은 유리의 기분을 맑게 해줍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던 유리는 곧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다시 떠올립니다. 상쾌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집에서 가져온 끈을 보아두었던 나무 가지에 걸고, TV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자신의 목에도 감습니다. 그리고 세상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몸에서 힘을 뺍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뭇가지가 유리의 몸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와그작 부러져버립니다. 유리는 쿵 떨어져 데구르 굴러 아파합니다. 눈물이 쏙 나게 아파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등산 다녀오던 동네 할아버지가 유리를 본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유리가 운동하러 온 줄 알고 칭찬하십니다. ‘요즘 아이들은 쉬운 방법으로 살 뺀다고 하는데, 너는 이 새벽에 운동하러 온 것을 보니 기특하다. 애가 괜찮다.’라고 말입니다.
이 의외의 상황에서의 칭찬과 지지와 격려에 유리의 마음 한구석에 몽글몽글 힘이 생깁니다. 상황이야 그것이 아니었지만, 생전 처음 본 할아버지의 ‘기특하다'라는 칭찬은 유리의 마음에 씨앗이 되어 심어진 것입니다.
저는 ‘열두 살의 모나리자'에서 이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의외의 순간에 듣게 된 칭찬과 격려가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평상 시라면 실없는 농담처럼 지나쳐버리겠지만, 이상하게도 지치고 힘이 들 때 별거 아닌 작은 친철과 사소한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그리곤 마음 끝이 조금 따스해지면 어디서 부터인지 힘이 생겨 한 번 더 일어서보자하는 결심을 하고는 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동화를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독자가 아내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요. 피곤한 하루였는데 별생각 없이 들어와서 제 글을 읽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살시도를 실패한 유리. 학교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리를 보고 다가온 수상한 아저씨, 아니 수상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유리를 보고 씨름하기에 딱 좋은 체형이라면서 씨름부에 들어오라 말합니다. 처음에 거절하던 유리였지만,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넘어가 씨름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씨름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일단 해봐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리에게는 씨름이었습니다. 물론 요 이일수도, 그림일 수도, 음악일 수도, 공부나 노래일 수도, 컴퓨터 켜놓고 놀랍게 많은 음식을 먹으며 맛깔나게 설명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해보기 전에는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단 해보고 나면 그 일이 자신이랑 안 맞는지 어떤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과 맞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되는 것도 큰 깨달음입니다.
이제 유리는 씨름을 통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됩니다. 유리가 씨름부에 들어 우승을 했는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그 상처를 잘 딛고 일어서면,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동화의 마지막에 유리는 멋지게 웃으면서 손 내밀 수 있는 아이가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내의 동화를 읽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동화'는 결국 주인공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황과 환경과 여건이 쉽지 않음에도, 주인공은 스스로 맞서 성장하는 것이 동화의 중요한 이야기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물론 모든 동화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읽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내의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나면 저는 힘을 얻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아이들에게 팬레터가 왔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의 편지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편지 속의 아이는 자신도 유리처럼 통통했는데, 열심히 운동해서 살이 빠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삐틀빼툴한 글씨로 살이 1kg이나 빠졌다고 자랑하는 아이의 글에 아내도 저도 감동했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린이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아내가 행복한 얼굴로 하는 혼잣말이 있습니다.
“내가 동화작가 되기를 잘하였구먼. 참 잘하였구먼…”
그러면 저도 속으로 말합니다.
“아무렴… 니가 동화작가 되기를 천만다행이지. 참 잘했지. 안 그랬으면 니가 뭣이 되었겄냐?”
12살 유리는 이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좀 더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유리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아직 자기고 있는 12살 때의 제 사소한 아픔 한 줄이 옅어진 느낌입니다. 조금 더 편해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까지 아내의 두 번째 책 ‘열두 살의 모나리자' 이야기였습니다. 다음번에는 7년만에 세상에 나온 책. 아내를 울고, 울게 만든 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화작가 임지형을 성장시킨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마루타 소년"이라는 책입니다. 그럼 그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에 찾아오겠습니다. 늘 행복한 일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