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 소년

임지형관찰보고서

by 김민성

결혼했을 때부터 아내는 혼자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미 등단을 해서 첫 번째 책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지요. 오늘 이야기할 '마루타 소년'은 이미 저를 만나기 전에 초고를 써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원제는 '은빛 목걸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신문에서 본 한 줄의 기사를 보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에는 마루타 실험으로 죽은 시신을 태우는 소각장에서 은빛 목걸이가 발견되기도 했다는 한 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한 줄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한 폭의 이야기로 짜여지게 된 것이지요.


아내는 이 이야기를 몇 군데의 공모전에 보내고, 떨어지고, 다시 보내고 또 떨어지고를 반복했습니다. 동화로 다루기에 무거운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분량을 늘려 청소년 소설로 만들어 출판사에 투고하기도 했습니다.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중편의 수요가 있을 것 같아 다시 줄이기도 했지요. 그리고는 고민 끝에 초등학생 장편 동화로 다시 고쳐 썼습니다. '마루타 소년'은 초고에서 책으로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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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화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독자를 성장시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동화를 쓰는 작가도 성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루타 소년'을 수없이 고쳐 쓰고 책으로 낸 후 아내가 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야. 나 자신감이 생겼어. 이제는 어떤 이야기라도 끝까지 써낼 수 있을 것 같아!"


'마루타 소년'은 임지형에게 작가로서의 용기와 자신감을 키우게 해 준 작품입니다.


자기가 쓴 글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행자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문장이, 단어 하나에, 표현 하나하나가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라면 선 하나에, 미묘한 색 하나에 민감할 것입니다. 조각을 하신다면 작은 모서리 하나에, 결 하나에 집중하겠지요. 음악을 한다면 박자를 쪼개고 화음을 생각하며, 거대한 선율의 바다에 자신을 던질 것입니다.

작가는 단어의 숲을 맨발로 걷는 고행자 같았습니다. 들리는 것은 저벅거리는 내면의 발자국 소리이며, 홀로 이야기의 끝을 붙잡고 어슴프레 보이는 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말입니다.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가 드디어 마루타 소년을 다 끝냈다고 말했습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임지형이 더 단단한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요...


'마루타 소년'은 제목처럼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경복이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떠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동생들을 살피는 아이입니다. 며칠째 몸져누워있는 어머니와 밥 굶는 동생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돌다가 솔깃한 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용배 청년을 따라가면 보수가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날 밤 경복이는 남들 모르게 용배 청년이 말한 트럭에 몸을 숨깁니다. 알고 보니 그 트럭은 건강한 사람들을 속여 일본군에 생체실험체로 팔아넘기는 마루타 수송차량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복이가 도착한 곳은 돈을 벌 수 있는 일터가 아니라, 악명 높은 731부대였지요. 우연히 어린 경복이를 알게 된 사토시는 경복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테츠오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합니다.
일찍 어머니를 잃고, 간질을 앓고 있어서 병약한 테츠오는 친구가 없이 외로운 아이였습니다. 테츠오와 경복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토시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는 테츠오의 간질을 낫게 하기 위해 경복이를 신약 실험체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사토시를 연모하는 일본군 간호장교 유키코는 아들인 테츠오의 마음을 먼저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연히 테츠오가 만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테츠오에게 만두를 선물합니다. 하지만 그 만두는 731부대에서 마루타들에게 실험하기 위해 만든 세균 만두였고, 그걸 먹은 테츠오는 중태에 이르게 됩니다. 분노한 사토시는 경복이에게 책임을 묻게 되고, 테츠오는 경복이를 살려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게 되는데...

무정한 어른들의 세상에 던져진 경복이와 테츠오. 그들은 우정을 나눕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받아들입니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간질병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일본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호쾌하기 일본을 정벌하고 혼내주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합니다. 미래를 위해 이제는 그들을 용서하자가 이야기를 풀기에 일본 정부는 아직 충분히 반성했다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과 일본 어린이들이 이런 역사 동화를 함께 읽고, 서로의 역사를 알게 되고,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이해에 이르게 된다면, 비로소 이 아픈 상처가 옅어질 것입니다.


자. 여기서부터는 책에 나오지 않는 뒷 이야기이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처음에 이야기를 썼을 때는 경복이가 죽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아내는 경복이가 죽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너무 슬퍼 코가 빨개지도록 울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했습니다. 그렇게 초고를 아이앤북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얼마 후 출판사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경복이가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아내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고, 저는 경복이가 마루타 실험에서 살아남는 것이 작위적이라 생각해서 반대했습니다. 주인공 경복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마루타 소년'에 긴 여운을 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경복이는 살게 됩니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저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작가의 선택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얼마 후,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서 편지나 메일을 통해 반응이 왔습니다.
한결같이 '경복이가 살아서 너무 다행이에요.'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아내와 출판사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동화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동화이기 때문에 더욱 읽는 독자를 염두하고 써야 하는 것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읽는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라게 하고, 힘을 주고,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어야 하겠지요. 작가의 작품으로의 욕심 이상으로 독자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장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더 재미있는 동화.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만져주고, 세상을 담은 동화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계속 지지하고, 응원하고, 도와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동화작가 임지형의 책을 더 많이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지금까지 '마루타 소년' 소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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