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57
이 책 재미있어요.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던 어머니는 내 의외의 권유에 약간 놀랐는지 쳐다보았다.
서점에 올 때마다 매대에 아내의 책이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새로 나온 책은 신간 매대에 잘 자리 잡고 있는지, 인기도서나 추천도서의 매대를 지키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리곤 공연히 검색컴퓨터로 가서 아내의 책들을 찾아보고, 재고는 몇 권이나 있는지 찾아본다.
아내랑 종종 말하는데,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임지형의 책' 한 권이 팔리는 것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아동도서 매대를 기웃거렸다. 마침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같이 책을 고르는 엄마를 보게 되었다. 서점에 서 있다가 몇 번이나 용기를 내지 못해 하지 못한 일이 생각이 나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넉살 좋게 아내의 책을 소개하는 일 말이다.
아이의 손에는 학습만화가 이미 하나 들려있었다. 가만히 혼자 넘겨짚어 보기를,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만화책을 하나 얻었고, 엄마는 만화를 빌미로 동화책도 하나 읽게 하려는 계산이지 싶었다.
'그래, 어차피 사는 것은 저분의 몫이니 소개라도 해보자.'
마음 끝 저 멀리 에서부터 용기를 끄집어내서 단단히 동여맸다.
내 나름의 계산은 이랬다. 오후의 따스한 빛이 비치는 서점에서,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분에게, 가볍고 따스한 목소리로 '제가 책 하나 추천해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내가 공유나 강동원 같은 외모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LED 형광등이 비치는, 분주한 서점 한복판에서, 곰 같은 인간이 대뜸 접근해 '이 책 재밌어요.'라고 할 뿐이다.
무안해졌다.
얼른 나는 수상하거나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아내가 쓴 동화책이거든요."
그때야 약간의 경계가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책 표지의 UFO와 외계인, 코믹한 그림과 초능력이라는 단어에 아이는 관심을 보였다.
"너 이거 볼 거야? 괜찮아?”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두 권의 책을 들고 아이와 엄마는 계산대로 갔고 난 매대 앞에 서서 뿌듯해했다.
더 둘러보다 아내의 책이 하나 더 눈에 들어왔다.
매대에서 손을 많이 탔는지 모서리가 헤졌다.
작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혹시라도 책을 살일 있으면 중간 정도에서 꺼내 상처 없는 새 책을 샀겠지.
그런데 이젠 책 한 권이 그냥 나오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저 안에 쓰인 글자 하나, 단어 하나 아내가 고민하고 고민해서 쓴 거다. 편집자님과 회의하여 고치고 또 고쳤다. 그림작가님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거다. 출판사에서 서점까지 오는 동안 또 많은 손을 거쳤겠지.
제일 위에 놓여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도, 이 책은 헤져 이 자리에 남겨져 있었을 거다. 과한 감정이입 후 난 책을 집어 들었다.
'얘 너 그동안 수고했다. 그러니 넌 나랑 같이 가자. ‘
여유가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더 사고도 기뻐할 수 있을만큼...
미안한 마음으로 모서리가 헤진 아내의 책 한 권을 들고 서점을 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