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행운

100개의 글쓰기 65

by 김민성

아내의 개인기 중에 재밌는 것이 하나 있는데, 네 잎 클로버 찾는 재능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보기 어렵지만, 클로버가 자랄 무렵이면 어김없이 네 잎 클로버를 찾아온다. 자주 운동가는 집 근처의 공원이나, 길가의 화단 같은 곳에서 찾아오지 싶다. 종종 아내는 그렇게 찾아온 네 잎 클로버를 책갈피에 끼우거나, 컵에 물을 받아 띄워놓거나 했다.


나야 그런 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눈곱만큼도 믿지 않으니, 아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가 좋다는데. 그럼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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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클로버를 ‘토끼풀’이라고 불렀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토끼가 좋아하는 풀이라서 토끼풀이라고 했다.

국민학교 때 새와 토끼, 작은 동물을 키우는 우리가 학교에 있었다. 어렴풋한데 거기에 무려 ‘공작’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친구들하고 토끼가 좋아하는 풀이라고 토끼풀을 여기저기에서 뜯어서 가져다주고, 토끼가 오물오물 먹는 것을 지켜보고는 했다.


나중에 무슨 무슨 상식사전(?) 같은 책에서 토끼에게 토끼풀을 주면 죽는다는 내용을 읽었었다.

토끼풀에는 시안화합물이 들어 있는데 이게 추리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청산가리의 원료라고, 먹으면 죽는 극독이라고 쓰여있어서 충격을 크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주 극소량이 들어있어 먹는다고 바로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고도 했지만, 충격은 충격이었다.

선량한 마음으로 토끼를 독살하려 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보니까 식물의 씨앗에는 거의 시안화합물이 들어있다더라, 식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씨앗을 생으로 많이 섭취하면 복통이나 설사가 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지형씨는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는 소소한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을 좋아하고, 찾은 후 자신에게 작은 행운이 생길 거라고 믿는 이 모든 과정 자체를 즐거워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가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형씨가 없는 어느 날,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쓸쓸해진 집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무심결에 클로버 띄워놓은 물을 벌컥 마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효대사가 해골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 구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온몸으로 겪었다.
에페페 뱉어내고, 황급히 불을 켰을 때 물컵에 둥둥 떠 있는 네 잎 클로버는 내게 행운의 상징이 아니라, 제거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그 뒤로 나는 지형씨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래는 새해에도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네 잎 클로버 이야기가 이상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원래 이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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