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위로하는 홍릉숲

번아웃에서 나를 구한 음악

by 글노리

나는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을 키우는데 크게 관심이 없다. 집 베란다나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분 한 둘쯤은 둘만도 한데 건사하기 귀찮은 마음이 항상 이긴다. 주말 농장 텃밭에 묘목을 심거나 상추, 오이, 토마토 같은 채소를 가꾸는 사람의 부지런함에 놀라곤 한다. 이런 나도 심신이 지칠 때면 나무가 울창한 숲이 생각난다. 숲길에 있는 나무가 새잎을 틔우고 잎이 무성해지고 마른 잎을 떨구며 매년 살아 있는 걸 보면서 계속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추위를 견디고 봄에 새로 돋은 잎을 보면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한 여름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여기서 쉬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가을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잎이 흔들려도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잠시 내 마음이 흔들려도 괜찮다고 달래주는 것 같다. 이처럼 말없는 나무가 나를 위로해 줄 만한 대한민국의 명품숲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홍릉숲이다. 홍릉터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능이 남양주로 옮겨가면서 한국 최초의 수목원이 된 곳이라고 한다.

정문에서 ‘천년의 숲길’ 탐방로로 들어서니 말끔하게 나무 데크가 깔린 길이 나를 맞아 준다. 양 옆에는 잎 모양이 다양한 침엽수, 활엽수와 명칭대로 나무가 감내했을 천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메타세쿼이아도 있다. 조금 올라가니 ‘벌 조심’이라고 쓴 경고문이 보인다. 얼마 전 벌을 피하다 부상을 입은 터라 화들짝 놀라 황급히 경로를 바꿨다.

20250816_125535.jpg < 천년의 숲길 입구 >

다음은 ‘문배나무길’을 산책했다. 한 바퀴 돌고 약초원 쉼터에 오니 식물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거의 모든 식물을 모아 놓았다고 하더니 여러 종류의 풀이 줄지어 있다. 모두 이름표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모르던 나무와 풀을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다. 쉼터 부근에 ‘뱀 조심’이라는 경고문이 또 눈에 들어온다. 멀찍이 앉아 냉보리차를 마시며 주변에 계시던 탐방객과 담소도 나누면서 휴식을 취했다.

홍릉수목원의 나무가 조용히 내주는 그늘은 늦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도 힘을 못쓰게 할 만큼 시원했다. 나무는 자신이 품고 있는 건강한 향기를 바람에게 부탁이라도 한 듯 내게 전해 주었다. 내 얼굴과 몸에 스치는 바람은 말없이 나를 토닥여 주는 나무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번아웃에서 나를 구할 때처럼.


오랜 기간 일에만 몰두하던 나는 가족,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이 산업재해 아니냐고 얘기할 만큼 심각하게 아팠다. 나는 치료 과정이 힘에 겨웠기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에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번아웃 증세가 왔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도 없고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휴일 외출을 준비하며 집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TV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다. 누가 저렇게 노래를 잘하나 싶어 알아보니 어떤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다. 이것저것 찾아 듣다 해당 밴드가 발표한 모든 노래를 듣기에 이르렀다. 할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으로 ‘안녕하세요! 전 제가 Rock을 좋아한다는 걸 님들의 음악을 듣고 알았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읽었는지 확인 조차 되지 않았지만 이후 나는 빈번하게 콘서트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고 SNS에 감상 후기도 남기고 정서적 교감을 한다고 착각도 하면서 큰 기쁨을 누렸다.


록 밴드에서 시작한 나의 음악 듣기는 조금씩 범위가 확장되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팝 가수 밥 딜런(Bob Dylan)의 공연도 새로운 음악 체험 차원에서 관람하기로 했다. 밥 딜런은 50년이 넘도록 음악 활동을 했고 작업한 앨범 수가 38개, 발표한 곡은 650개에 이르는 대단한 이력을 지녔다. 음반의 누적 판매량은 1억 2천5백만이라고 한다. 그는 한 개도 받기 어려운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그래미, 퓰리처, 노벨상을 모두 받았고 가수, 작곡가, 화가, 작가, 시인, 사회운동가로 다양한 역할을 했다. 음악도 포크, 블루스, 컨트리, 가스펠, 로큰롤, 재즈 등 여러 장르를 수용했고 다루는 가사도 정치, 사회, 철학, 문학 등으로 범위가 상당히 넓다.

2018년 7월 그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듣고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겠다고 이 분을 모델로 한 영화까지 보며 예습을 했다. 밥 딜런 내면에 있는 7가지 캐릭터를 6명의 배우를 통해 표현한 <I’m not there>라는 영화였다. 관람할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는 공연 내내 인사말을 포함하여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Blowing in the wind> 등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노래라기보다 시를 읊는 듯했다. 왜 음유 시인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무대에 화려하게 번쩍이는 조명은 없었고 차분한 불빛이 나의 소란스러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들은 마치 집 앞 작은 술집에서 공연하는 가수와 밴드처럼 편안함을 전달해 주었다. 기타를 치며 무대에 올랐지만 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했고 이따금씩 부는 하모니카 소리에 관객의 탄성이 들릴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듯이 흘러나온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맨 처음 마음을 빼앗았고 앙코르곡 연주 시 함께 한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감동이었다. 엄청난 호응이나 떼창은 없었지만 모두 알아서 박자를 맞추고 박수를 쳤다. 그 흔한 대형 스크린조차 제거하여 볼거리 많은 세상에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Audio보다는 Video를 즐기는 나까지 홀린 듯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게 했다. 거장은 아무 말 없이 오로지 음악으로만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인상적이었던 다른 공연은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Maksim Mravica)의 2018년 10월 연주회였다. 그가 무대에 등장하니 배우나 모델을 능가하는 수려한 외모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얘기가 달라졌다. 경이로운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Nostradamus>를 연주할 때의 파워 넘치는 강렬한 퍼포먼스와 <Flight of the Bumble Bee>에서 긴 손가락을 이용한 현란한 속주 테크닉은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첼로와 협연한 <Remember Me>는 슬픈 감정 자체로, 보컬과 어우러진 <Child in Paradise>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드럼 및 퍼커션과 함께 한 <Croatian Rhapsody>,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은 새로움으로 나를 위로했다. <All of Me>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이었고 <Exodus>, <The Godfather>는 클래식과 영화 음악의 만남이었으며 <New Silk Road>는 동양과 서양 음악의 만남이었다. 장르가 달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하모니를 이룬 진정한 ‘크로스오버’였다.

나의 우울하고 복잡한 심경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행위와 자유로운 손가락, 고정관념을 깬 음악을 통해 모두 사라진 듯했다. 장르와 악기에 상관없이 조화를 이룬 음악은 내 마음을 토닥이는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 코너를 그리워하며 만든 노래 <Tears in Heaven>을 10여 년이 지난 후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 이유가 연주할 때는 곡을 쓰던 때의 감정에 녹아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주할 때마다 느꼈던 상실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상실감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언젠가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이 곡을 다시 선보일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결정에 대해 나는 긴 세월 동안 슬픔을 지워내면서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애도가 완전히 끝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번아웃에서 벗어났지만 다시는 번아웃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이제는 치유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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