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길이 머무는 성내천

살려고 반복했던 필라테스

by 글노리

일상은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순서, 식사를 하는 시간, 출퇴근 시 이용하는 교통수단, 잠들기 전 스마트폰 보는 습관까지 대체로 자신만의 일정한 규칙이 있다. 무의식 중에 굳어진 삶의 방식은 종종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는 따분한 일상을 바꾸고 싶을 때 의식적으로 목적이 뚜렷한 습관을 만들어 꾸준히 실천한다. 그런 반복 활동 중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유산소 운동이 바로 걷기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걷기 장소로는 성내천을 꼽을 수 있다. 주택가 근처라 접근이 쉽고 길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발도 편하다. 나무와 물도 있고 경관이 좋아서 보는 재미도 있고 구간별로 나누어 걸으면 경로에 변화를 줄 수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다. 인공 하천이어서인지 구색 맞추어 설계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다.

성내천은 잠실나루역에서 3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하천이다. 우리 집에서 잠실 철교만 건너면 되는 곳이고 사무실에서는 더 가깝다. 풍경이 근사하다 했더니 전국에 있는 2만 8천여 개의 하천 중에서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적도 있다고 한다.

2002년까지만 해도 악취가 나는 골칫덩어리였는데 3년 동안 노력해서 2 급수 물이 흐르게 되었으니 복원에 성공했다고 하겠다. 오리, 원앙, 꿩 같은 새가 자주 보이고 헤엄치는 물고기도 많아 동네 개울 같기도 하고 야생화가 지천이라 동네 정원 같기도 하다.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평평한 길이고 철마다 피는 꽃도 예쁘고 나무로 드리워진 그늘도 있고 흐르는 물소리까지 시원하니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점심 식사 후 회사 동료와 걸을 때도 있고 휴일에 걷기만을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올해도 벌써 몇 번 다녀왔다. 이번에 갔을 때는 잠실나루역에서 올림픽공원역까지 구간을 걸을 예정이었으나 햇빛이 뜨거워 나무가 우거진 그늘만 찾아다니다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이 길 걷기 말고도 내가 몇 년간 체력 향상을 목적으로 부단히 해온 근력 운동이 있는데 필라테스이다.

20250605_102438.jpg < 송파둘레길 성내천 구간 나무 그늘 >


나는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골수에 사무치게 느낀 사람이다. 한 3년 가까이 운동이라고는 숨쉬기가 전부였던 나는 체중이 빠지고 근육도 줄어들어 바로 격한 운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수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발반사요법이라는 일종의 마사지를 받으며 겨우 현상 유지만 했다.

그런데 점차 어깨 돌리기도 힘들고 손가락은 구부리거나 펼 때 걸리는 느낌이 들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손가락이 튕기듯 펴졌다. 어깨는 석회화건염이라고 했고 손가락은 소위 권총증후군이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주사도 맞고 도수 치료도 받고 침도 맞았는데 그때뿐이었다.

병원 치료보다는 운동이 해결책인가 싶어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서 PT(Personal Training)를 받았다. 운동 전에 몸을 덥힌다고 트레드밀에서 러닝도 하고 근력과 웨이트 트레이닝은 물론 식단 조절까지 했다.

10개월쯤 되었을 때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발판을 놓고 계단 오르내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종아리 안쪽에서 ‘띵’ 하고 고무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왔고 그다음부터 다리를 움직이기 어려웠다. 트레이너가 근육을 풀어 주었는데 부상 여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며 병원행을 권했다. 종아리 안쪽 작은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큰 근육이 상한 건 아니어서 수술할 필요는 없었지만 한 달간 반 기브스를 하고 다녔다.

회사가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걸어 다니며 전철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이니 한 달 동안 택시를 타고 다녔다.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 체증이 심한 구간이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했고 왕복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주변 동료에게 물어보니 헬스 하다 다치고 그만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근육을 키워서 바디빌딩 대회에 나가려는 게 아니라 건강해지려고 하는 건데 부상 위험이 적지 않다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운동을 찾기로 했다.

다음 선택지로 수영을 검토해 봤다. 입수 전 수영복 갈아입고, 수영 중에는 물안경 도수가 맞지 않아 뿌옇게 보이니 소리까지 잘 안 들리고, 수영 후에는 씻고 머리 말리고 젖은 옷가지들 정리하는 절차가 번잡스러웠던 경험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소독제에 절어 염소 냄새 가득한 물을 나의 시원치 않은 피부가 견딜까 싶었다. 다시 다른 운동을 찾았는데 그게 필라테스였다.


필라테스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독일인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Pilates)라는 사람이 고안한 체조라고 한다. 감옥에서 운동 부족 해소와 정신 수련을 위해 침대와 매트리스 같은 간단한 기구만으로 근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생각해 낸 동작이었다.

호흡 조절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요가와 언뜻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필라테스는 리포머(Reformer), 체어(Chair), 배럴(Barrel) 같은 기구와 아크(Arc), 폼롤러(Form Roller), 서클(Circle) 같은 소도구를 활용해서 근육을 단련하고 유연성을 키우는 운동이다.

매일 강습을 다니기는 어려웠고 일주일에 2~3회 정도로 지속했다. 업무 때문에 시간에 쫓기거나 저녁 식사를 걸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결석할 게 뻔해서 여유 있게 가장 늦은 시간으로 예약을 하곤 했다. 가지 않아도 될 핑계를 사전에 없애 버린 예방 조치였다. 식사 후 2시간이 되기 전에 운동을 하면 먹은 것이 역류하는 걸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저녁 식사도 일찍 했다. 강사에 따라 훈련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내게 맞는 선생님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나는 한쪽 무릎에 모든 체중을 싣고 하는 동작에 취약했다. 무릎뼈 모양이 이상한지 바닥에 닿으면 통증이 있어서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계속 무릎을 이용한 동작만 했다. 강습비 내고 운동하러 왔는데 한 시간 내내 쉬고 있으라는 건지, 내게 적합한 동작을 하려면 비용 더 지불하고 1:1 강습을 받으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신 다른 걸 하라고 알려줘도 될 듯한데 신경도 안 썼다. 20분쯤 지나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수업 중에 그냥 나왔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상황을 설명했고 해당 강사 앞으로 예약된 내 수업 전체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기한 건 이 강사는 몇 달 후 보이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라고 잘했을 리 없겠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강생의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후에는 다행히 내게 맞는 수준의 동작을 가이드하는 선생님들을 만나 큰 문제없이 운동을 해왔다.


나는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 일단 결정하고 나면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편이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났을 즈음 어깨 통증은 온데간데없었고 방아쇠수지증후군도 괜찮아진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회복된 것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세어보니 만 6년이 지났다. 게으르고 움직이기 싫어하고 자발적인 운동에는 전혀 진심이 없던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한 필라테스가 자기 몫을 너무 잘 해낸 느낌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집 근처 한강변에서 달리기도 해 볼 생각이다. 처음부터 매일 하자고 들면 부담스러워서 곧 그만둘 테니 일주일에 한 번으로 시작해 차츰 회수를 늘려가려고 한다. 이것도 한 5년쯤 꾸준히 하면 10km 또는 하프 마라톤 대회 정도는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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