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편안한 우이천

강력한 치유제 자연의 소리

by 글노리

얼마 전 우리 집 바로 위층 아파트 입주자가 한 달간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문서에 서명을 받아갔다. 엘리베이터에 공지문도 붙였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은 상관없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소음 때문에 괴로웠다. 부수는 소리, 드릴 소리, 못 박는 소리가 공휴일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쿵쾅 거렸다. 얼마나 대단하게 수리를 하길래 이렇게 시끄럽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밀폐된 실내여서 소리가 더 잘 들리나 싶어 창문을 열었더니 공사하는 집도 창문을 열어 놓았는지 밖을 통해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결국 오래전 구매해 두었던 실리콘 귀마개로 귀를 막았다.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았지만 소리의 크기가 반 정도로 줄었다.

공사 소음이 멈춘 어느 날 저녁 초인종이 울렸다. 아기를 품에 안은 새댁이 서 있었다. 한 달 넘게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며 떡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공사가 끝나고 입주를 한 윗 집 사람이었다. 나는 관리실에 소음으로 민원을 넣은 적도 없고 요즘 이웃집에 이사떡을 돌리는 경우는 드문데 기특한 생각이 들어 그간의 괴로움이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소음에는 물론 취약하고 집중해야 할 일이 있거나 피곤할 때는 음악조차 거슬려 듣지 않는다. 소리가 들리면 피로도가 올라가고 머릿속이 엉키는 듯 생각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5주 가까이 공사 소음에 시달린 나는 조용한 산책로를 물색하다 우이천을 발견했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우이천으로 향했다. 물이 깨끗하고 수변 공간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길이 평탄해서 걷기 편하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조용했다. 오늘은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은 듯 날씨가 흐려서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우이천은 슬쩍 보면 그냥 도심 하천 느낌인데 자세히 살피니 키가 훤칠한 풀숲, 작은 갈대밭, 늘어진 버드나무가 그럴듯하게 장식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산책을 하다 운 좋게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방사했다는 원앙과 백로를 만났다. 공사 소음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소리도 간간이 들려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20251003_133258.jpg
20251003_133355.jpg
< 좌 : 우이천의 초목과 버드나무 > < 우 : 우이천의 원앙 >

같은 소리인데 왜 공사할 때 나는 소리는 시끄럽고 불쾌하게 느껴지고 새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공적으로 개발된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인간은 원래 자연 속에서 살던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도시의 소음보다는 새소리, 물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훨씬 익숙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들은 숲에 위험한 포식자가 나타나면 조용해지거나 도망치듯 날아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새소리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이 없다는 신호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새소리는 일정한 리듬이 있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지만 자동차 경적이나 공사 소리는 불규칙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새소리와 소음의 차이에 대해 내가 품고 있던 궁금증을 다른 이들도 가졌는지 새소리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새소리를 들은 참가자는 불안과 편집증 증상이 감소되었고 교통 소음을 들은 사람은 우울감이 증가했다는 보도 자료가 있다.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은 참가자가 뇌파 측정 결과에서 스트레스 회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특히 새소리는 뇌의 주의력과 관련된 부위에서 활발한 반응을 유도했다는 실험 사례도 있다. 도시 거주자가 새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외로움이 감소하고 집중력과 스트레스 지표가 개선된다고 밝힌 학자도 있다. 새를 관찰하거나 새소리를 듣는 활동을 통해 정신 건강이 증진되고 자연과의 연결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 연구도 있다고 한다.

새소리는 대체로 주파수가 높은데 인간의 뇌는 이러한 고주파 음역대를 안전한 신호로 받아들인단다. 기계음이나 알람처럼 인위적으로 반복되는 소리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새소리는 불규칙 속에 규칙이 있는 듯 미묘하게 변화하는 리듬이라 부담 없이 편안하게 들린다는 설명이다. 그렇다. 아침 출근을 위해 설정한 시계 알람음이 스트레스를 주는 기계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편안한 잠으로부터 깨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의문이 생겼다. 역시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노랫소리는 새소리와 어떻게 다를까?

나의 지식을 총동원해 따져 보니 새소리는 생존이나 영역 표시를 위한 순수 자연의 소리이고 노래는 목소리, 즉 성대에서 나는 자연의 소리에 감정을 담고 예술을 가미한 복합적인 소리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새소리는 높낮이가 있긴 하지만 반복적인 리듬이 주를 이루고 노래는 멜로디, 가사, 화음까지 있으니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한 게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사람의 노래는 경우에 따라 자연의 소리로 들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반주 없이 부르는 아카펠라나 우리나라 민요 같은 건 목소리 만으로도 자연에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특히 피아노 반주에 새소리를 섞는다거나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조합한 기타 반주에 맞춰하는 노래를 들을 때면 더욱 자연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과도한 비트나 전자음을 배경으로 한 음악을 오래 들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노래는 어떻게 부르느냐, 어떤 소리로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자연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도 긴장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리라.


본능적으로 안전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새소리와 달리 인간의 노래는 의도한 감정을 전하는 소리이다. 누군가 부르는 노래가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흐르면 듣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해지는 걸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작품 중 <솔베이지의 노래>로 잘 알려진 희곡 <페르귄트>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인생의 방황 끝에 지쳐 돌아온 페르가 한 때의 연인 솔베이지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장면이다. 솔베이지가 부르는 노래에 감동을 받은 페르가 “그 노래를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라고 묻자 솔베이지는 “슬픔이 가르쳐 준 노래지요. 신께서 제게 슬픔을 보내셨는데 그 슬픔이 인생의 의미와 노래를 가르쳐 준 것이지요”라고 답한다. 그녀의 노래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배운 사랑의 표현이었기에 페르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을 것이다.

새소리와 노랫소리는 똑같이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소리이지만 노래는 인간의 영혼을 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24화나의 발길이 머무는 성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