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에 펼쳐진 희망

우주 영화 3편의 메시지

by 글노리

매년 가을이면 난지 한강 공원에서 뮤직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도 풀밭에 앉아 소풍을 즐길 생각으로 수개월 전에 티켓을 예매했다. 시작 시간은 낮 12시이지만 주요 출연진은 늦은 오후부터 무대에 오르니 처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집에서 먼 난지도까지 원정을 가게 되었으니 겸사겸사 근처 하늘공원을 구경하고 공연은 뜨거운 해가 좀 식은 다음에 관람하기로 했다.

월드컵경기장 부근 '하늘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보니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공원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알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이었는데 15년 동안이나 서울에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를 전부 모으다 보니 오물이 95m까지 쌓였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높이의 쓰레기산이었고 악취, 메탄가스, 침출수로 주변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변신했다.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네이버 지도앱을 켜고 따라가다 보니 월드컵육교가 보이고 그걸 건넜더니 곧이어 하늘공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하늘공원은 서울의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해는 지나온 힘든 시간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밝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며 희망을 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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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하늘계단, 우 : 하늘공원 표지석 >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

331개의 '하늘계단'을 오른 후 조금 더 가면 ‘하늘공원’이라고 쓴 돌이 보이고 좀 더 걸으면 '하늘전망대'에 갈 수 있다. 이곳에 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저 하늘 끝 더 멀리 가면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에서나 보던 은하계에 닿을 수 있겠지 라는 상상에 이르자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몇 편이 떠올랐다. 이 영화들로부터 나는 우주에서 당한 재난을 다룬 Science Fiction이라는 사실 외에 중요한 공통점을 찾았다.


2013년 개봉한 <Gravity>는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감독의 작품이다. 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감독, 촬영, 편집, 음향효과, 시각효과, 음악, 그리고 음향믹싱까지 7개 부문의 상을 석권했다. 플롯은 간단하다.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 우주 속 미아로 표류하던 한 사람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생존기이다.

허블 망원경 수리를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히면서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게 된다. 기온은 섭씨 125도와 -100도를 오르내리고 소리도 기압도 산소도 없어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이다. 라이언은 지구로 돌아오려는 시도가 연이어 실패하자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여 생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환영처럼 나타난 동료(조지 클루니)의 말을 듣게 된다.

“돌아갈래 여기 있을래? 여기가 좋긴 하지. 시스템 다 꺼버리고 불도 끄고 눈을 감고 모두를 잊으면 되니까.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계속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살아가는 이유가 뭐가 있냐고? 자식을 잃었잖아.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여전히 중요해. 계속 살기로 결정했다면 그냥 가보는 거야.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비로소 용기를 얻은 라이언은 귀환선을 준비해 무사히 지구의 한 호수 위로 돌아온다.

3D 효과와 1인칭 카메라 시점을 활용한 덕에 우주의 거대함과 광활한 허공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빈 공간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공포와 고독을 이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였다.


<Interstellar>는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감독의 작품이다. 2014년에 개봉했는데 러닝타임이 10분 모자라는 3시간으로 엄청 길다. 국내에서만 천만명의 관객을 끌었던 흥행 돌풍 화제작이다. 세계 정부와 경제의 붕괴는 물론 생존에 필요한 식량까지 부족한 지구를 대체할 인류의 터전을 찾기 위해 다른 행성을 탐험하는 내용이라 다소 심각하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브랜드 박사는 2개의 플랜이 있다. 하나는 중력 제어 방정식을 응용해 우주선을 쏘아 올린 후 인류를 태우고 해당 행성으로 가는 작전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새로운 행성을 찾은 후 5천 개의 수정란을 보내 인류를 재건한다는 계획이다.

자식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던 전직 파일럿 쿠퍼 일행이 맨 처음 찾은 밀러 행성은 표면이 전부 물로 덮여 있어서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죽음의 장소이다. 위기를 거쳐 다음으로 도착한 만 행성은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여 역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생존 가능한 환경을 갖춘 에드먼즈 행성으로 가는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인류가 지구를 벗어난 신세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이 있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극 중 쿠퍼가 말한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2015년 개봉작 <The Martian>은 앤디 위어(Andy Weir)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 <캐스트 어웨이>, <김씨 표류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는 화성 생환기로 다소 코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대원들과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 폭풍을 만나면서 사망한 것으로 오인되어 홀로 남겨진다. 식물학자였던 마크는 남은 감자로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거름을 주며 농사를 짓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화성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한다.

자신의 생존을 지구에 알리기 위해 아스키코드, 16진수 등 지식을 총동원하며 애쓰는 마크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그는 긍정적인 자세로 유쾌하게 화성에서의 삶을 설계했고 결국 동료들은 우주선 도킹을 통해 그를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은 마크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던 것이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닥치는 대로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관람한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왓챠피디어에 평점을 부여한 작품의 목록을 보니 1,000편이 좀 넘는다. 장르는 드라마, SF, 로맨틱코미디, 액션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새> 같이 간접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스릴러류는 반기지만 <13일의 금요일>이나 <스크림>처럼 정체 모를 인물에 의한 연쇄 살인이 화면 가득한 호러물은 피하는 정도이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영화에 대해 소감을 쓰는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거나 연출할 계획도 없고 연기를 할 소질도 없으며 OST(Original Sound Track)를 작곡할 역량도 안되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 관람평을 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국적은 감독이나 출연하는 배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배경은 어느 지역인지와 무관하게 제작사의 지분율을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알고 있다. 배우 윤여정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게 한 영화 <미나리>가 한국 감독이 만들었고 한국 배우들이 연기했으며 한국 가족의 역사를 다루었음에도 미국 영화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국적이 곧 그 영화의 국적이라고 여겨 왔다. 영화는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 사상, 철학을 대사와 배우를 통해 표현하는 작업이므로 기본적으로 감독의 예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가 무료할 때 시간을 보내는 오락거리나 줄거리 전달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게 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겪은 듯 느끼게 하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영상과 음악으로 대신 전해주기도 한다. 어떤 영화는 마음속에 새겨지기도 하고 어떤 대사는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3편의 영화는 모두 다른 감독이 연출했음에도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으로 가슴속에 희망을 안겨 준다.

<Gravity>는 우주라는 죽음의 공간에서 지구라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적인 희망을 주제로 했다. <Interstellar>는 지구가 멸망해 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생적인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발견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The Martian>은 낯선 화성에서 마주한 재난 앞에서도 긍정의 힘으로 돌리는 희망 회로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된다고 알려준다.

영화는 말하기 어려운 사실을 말하고 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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