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세워야 한다

2. 신문기사에 없는 숫자

by 송영광

70킬로그램짜리 범용 컴퓨터라니. NASA조차 인간을 칭찬하는 방식이 좀 그렇다. 하지만 건조한 기술 보고서 안에 인간의 본질이 숨어 있다. "비선형 처리"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것은 기계가 한다. 인간이 우주선에 탄 이유는, 매뉴얼에 없는 순간에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세기 전 NASA조차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은 정반대를 훈련하고 있었다. 예측 가능한 문제에 예측 가능한 답을 내는 훈련. 채점 기준에 맞추는 훈련. 정답이 정해진 세계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훈련. 이 훈련의 끝에서 아이들은 NASA가 기계에게 시키려 했던 일 — 선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연산 — 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NASA가 인간에게 맡기려 했던 일 —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 — 은 한 번도 연습하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간다.


이 데이터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결함 아닌가. 결함이 발견되면 수리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결함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교육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그 결함을 수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코딩을 가르치되, 시험을 위한 코딩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주려 했다. 교육의 방향을 "소프트웨어 교육을 통한 창업가 경험"으로 잡았다. 교육계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그런 교육이 되겠느냐고. 기존 학원처럼 국영수 가르치듯 코딩을 가르치면 성적도 나오고 돈도 될 거라고. 하지만 한국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시험 과목이 아니었다.


막상 시작하니 학생의 30퍼센트가 강남에서 토요일마다 차를 타고 왔다. 경주에서 오는 아이가 있었다. 원주에서, 강원도에서 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에 목말라 있었다. 자기가 생각한 것이 화면 위에 나타나는 순간, 아이들의 눈이 달라졌다. PISA 62위의 자아 효능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교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앱을 부모에게 보여주며 "제가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62위의 자아 효능감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보편 교육으로서의 코딩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렸고,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벽이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코딩을 사랑해도,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되면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이제는 우리 아이가 국영수를 해야 해서요. " 매번 같은 문장. 매번 같은 한숨. 어머니 탓이 아니었다. 대학 입시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중2 1학기는 선택이 아니라 포기의 시간이었다. 호기심의 싹이 입시라는 콘크리트 아래 묻히는 시간. 어머니도 안다. 이게 맞는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PISA 62위의 자아 효능감은 바로 이 콘크리트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낸 숫자였다.


일주일에 두 시간 오는 학원 안에서는 이 콘크리트를 깰 수 없었다. 구조를 바꾸려면 구조 자체를 새로 지어야 했지. 그때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학교를 세워야 한다.


세계 1위의 성적표 뒤에 62위의 자기 효능감이 숨어 있었다. 신문은 1위만 보도했다. 62위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야기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간 쌓아올린 교육 시스템의 성과를 부정하는 숫자이니까. 그러나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숫자가 아니다. 해마다 그 숫자만큼의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간다.


이 숫자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에 나오지 않는 그 등수가 자기 아이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사람들. 밤마다 학원 셔틀을 기다리면서 "이게 맞는 건가"라고 혼자 묻는 사람들. 숫자를 모르더라도 감각으로 아는 사람들. 아이의 눈에서 빛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적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어느 금요일 저녁, 그중 서른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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