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IT아빠모임
2016년 어느 금요일 저녁, 분당 판교의 D.LAB에 남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D.LAB의 메이커 스페이스에 김밥을 깔았다. 퇴근 시간에 걸려 늦는 사람이 많았다. 정장 차림은 거의 없었다. 캐주얼 셔츠에 노트북 가방을 맨 사람, 후드 위에 패딩을 걸친 사람, 퇴근하다 말고 뛰어온 듯 구겨진 와이셔츠 차림의 사람. 평균 나이 서른여덟에서 마흔다섯 사이. 직업은 제각각이었다. 포털 회사 개발자, 게임 회사 기획자, 통신사 엔지니어, 스타트업 대표. 공통점은 두 가지. IT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있다는 것.
특별한 안건은 없었다. 페이스북에 짤막한 글 하나를 올렸을 뿐이다. "IT 업계에 계신 아버지분들, 금요일 저녁에 한번 모여볼까요. " 열 명 정도 올까 했다. 서른 명이 왔다. 기대보다 세 배. IT 아버지들의 출석률이 학교 학부모 참관수업보다 높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가 이미 서로를 알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같은 시대에 같은 무게를 지고 사는 사람들은 소개 없이도 알아본다.
사전에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었으므로 즉흥적으로 한 가지를 제안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고. 이름, 회사, 아이 나이. 간단한 이야기만 하자고 했다. 간단한 이야기만 하겠다는 약속은 첫 번째 사람에게서 이미 깨졌다.
첫 번째 아버지. 포털 회사의 개발자. 초등학교 3학년 딸. "요즘 야근이 잦아서 아이 얼굴을 못 봐요. 출근할 때 아이가 자고 있고, 들어오면 또 자고 있어요. 주말에만 겨우 봐요. 그런데 주말에도 아이는 학원 숙제를 하고 있어요. 제가 옆에서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앉아서 지켜보는 거예요. " 그가 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번째 아버지. 게임 회사의 기획자. 중학교 1학년 아들. "아이가 밤 열한 시에 학원에서 돌아와요. 열두 시까지 숙제를 해요. 중학교 1학년이요.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어요. 수학 문제를 같이 풀어볼까 했는데, 이미 제 실력을 넘어섰더라고요. " 쓴웃음이 돌았다.
세 번째 아버지. 통신사 엔지니어. 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 아들. "가계부를 엑셀로 정리하다 새벽 2시에 잠을 못 잤어요. 수입이 나쁜 편은 아닌데, 학원비 빼고 대출 이자 빼고 보험료 빼면 남는 게 없어요. 두 아이 학원비가 월 300만 원이에요. " 그 숫자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엑셀의 잔인한 점은 감정 없이 숫자만 보여준다는 거니까.
네 번째 아버지. 스타트업 CTO. 초등학교 1학년 딸. "저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주변에서 영어 학원 보내라, 수학 선행 시켜라 압박이 와요.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뒤처진다는 말을 들어요. IT에서 일하면서 세상이 바뀌는 걸 매일 보는데, 정작 내 아이한테는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
다섯 번째 아버지는 말을 시작하다가 멈췄다. 잠시 천장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가 어제 물어봤어요. 아빠, 나 왜 공부해? 대답을 못 했어요. 좋은 대학 가려고? 좋은 직장 다니려고? 그런 말이 입에서 안 나오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으니까. " 방 안이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직업은 달랐다. 아이 나이도 달랐지. 하지만 이야기의 무게는 놀라울 만큼 같았다. 열 번째쯤 되자 패턴이 분명해졌다. 자기소개가 아니었다. 고해성사였다. IT 업계답게 한번 시작된 프로세스는 멈추기 어려웠지. 모든 이야기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살아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
경제와 교육. 서른 명의 아버지가 쏟아낸 이야기는 예외 없이 이 두 단어 사이를 오갔다.
이 아버지들은 한국 사회에서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IT 업계, 그것도 개발자와 기획자와 엔지니어. 한국 노동시장에서 상위에 속하는 직종이다. 연봉이 나쁘지 않고, 고용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다.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교육에 대해 막막해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