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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배르니 Sep 01. 2022

우울증에도 정체기가 있다

생각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매주 수요일은 정신과 상담일이다. 이번에도 짧은 안부인사와 함께 상담을 시작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이 물었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나는 답답했던 마음을 토로했다.


"지난주 상담 때 그러셨잖아요.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된다고요. 그런데 그게 안돼요. 저도 머리로는 알아요. 감사할 게 많다는 걸요. 우울증으로 이렇게 치료받고 있지만, 전 아직 젊고 건강해요.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갈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이렇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그게 진심으로 감사하지가 않아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감사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죠.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세상에 우울증 환자들은 다 고쳐졌을 겁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운동을 하면 몸이 변하는 게 눈에 보여요. 군살이 빠지고, 근육도 생기고요.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요. 나름 최선을 다해보려고 운동도 글쓰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어요. 여전히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동기의 안부 전화에, 결혼한다고 친구가 보낸 청첩장에 '난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남과 비교하는 제 자신을 볼 때면 힘이 빠져요. 우울증이 점진적 우상향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만 한 큼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전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선생님이 말을 끊으며 말했다.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조급한 마음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어요. 지난번 상담 때 본인이 말했죠? 3개월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 훨씬 나아졌다고요. 다시 말하지만 정신과 질환은 '시나브로 '나아집니다.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요. 감사하기가 어려운 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관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아요. 힘들어요. 하지만 잘 안된다고 포기해버리면 안 됩니다. 헤세드 씨 운동 열심히 하니까 잘 알죠? 운동할 때 처음부터 20kg, 30kg 들어집니까? 천천히 조금씩 무게를 늘려가잖아요. 생각하는 것도 똑같아요. '감사하는 것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해요. 적어도 지금은 당장 진심으로 감사가 안돼도,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나는 그동안 '감사'가 안돼서 마음이 답답했다. 특히 나처럼 평소에 감사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제 한 가지는 안다.


당장 '감사하기'가 안돼도 괜찮다. 
적어도 이제는 '감사하려는 노력'을 하니까.

상담을 끝내기 전 선생님이 물었다.


"저도 지금까지 여러 환자들을 상담해 왔지만, 헤세드 씨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치료도 그렇고 운동, 글쓰기도, 힘들 때도 묵묵히 해왔잖아요. 분명 나아질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요. 지금은 정체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아지고 있는데 조금 정체된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물어볼 거 있어요? 이 말 안 하고 가면 오늘 집에 가서 잠 못 잘 것 같다 그런 거?"


나는 물었다.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그게 잘 안돼요. 자꾸 비교하려는 마음이 들 땐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좀 덜 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선생님이 말했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비교하는 마음이 들면 일단 이렇게 생각해요. '아 내가 또 지금 비교하고 있구나' 인지하는 거예요. 그리고 비교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들면 나한테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옮기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보고 '아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나도 해볼까?' 이런 식으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면 돼요"


"단지, 비교를 하면서 '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 라며 스스로를 자학한다던가,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누구 때문이야'라고 남 탓을 하는 투사 같은 방어기제가 안 좋은 거죠"


나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꼭 비교하고 싶으면 하세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랑 비교하세요.
'어제의 나'와 비교해도 좋고
 '한 달 전의 나',
'6개월 전의 나'와 비교하세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그동안 왜 그토록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하며 글을 써왔는가?'


물론 하루빨리 회복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우울증으로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였다. 우울증으로 날려버리는 것 같은 이 시기에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지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들면 알아차릴 것이다. 


'아. 나 또 비교하고 있구나'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사진출처 

<a href="https://www.freepik.com/free-photo/depressed-woman-having-psychotherapy-session-doctor-s-office_26644295.htm#query=depression&from_query=%EC%9A%B0%EC%9A%B8%EC%A6%9D&position=31&from_view=search">Image by Drazen Zigic</a>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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