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4년제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 있는 대학을 가서 부모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중학교 때 내신관리를 잘해서 대학교를 가겠다는 말을 증명해 보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대학교를 가는지 전혀 몰랐다. 고등학교가 기계과였기 때문에 대학교는 당연히 기계과 계열만 지원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 정도로 대학교 진학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목표는 인 서울이었다.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은 홍대였다. 어디 대학교 어디가 가 좋고 어디가 가 내신 몇 등급 컷이고 그런 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비보잉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홍대 앞이 나왔다. 홍대 앞 젊음과 문화가 좋았다. 홍대를 가면 나도 저렇게 재밌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홍익대학교를 목표로 두었지만 어디든 4년제 대학교만 가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SKY 진학 대비반으로 수업을 듣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 앞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고 밥을 말아먹었다.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와서 영어단어를 외웠다. 영어와 직업탐구를 준비하였지만 직업탐구는 오래 공부하지 않아도 될 과목이었기에 영어에 올인하였다. 영어수업은 항상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때 쓰던 단어책이 형광펜으로 표기하고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필기하고 페이지를 접고 하다 보니 제일 더러웠는데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너덜너덜해진 책이었다. 나중에는 책을 보기만 해도 뿌듯하였다.
영어 멘토링에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나면 10시 집에 갔다가 독서실로 향해서 다시 공부를 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침 0교시로 영어 듣기를 하고 0교시가 끝나면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서 자습을 시작하였다. 다른 친구들이 하교를 하기 전까지 자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래도 실업계에서 수능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이 많았다. SKY 진학 대비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가서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일반학과 수업시간에도 수능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다.
전략적으로 각 대학별 실업계 특별전형을 노렸다. 정시보다 수시 1차로 대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하지만 수시 1차에도 수능 최저등급이라는 커트라인이 있었기에 그에 맞는 등급이 필요했다. 영어, 직탐뿐만 아니라 언어영역도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수시 1차로 홍익대, 광운대, 인하대, 경북대, 부경대, 동아대, 울산대를 지원했다. 그리고 홍익대, 인하대, 부경대에서 1차 합격을 울산대와 동아대에서는 이어진 면접 끝에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울산대에서 했던 면접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수학과 영어 면접을 봤었는데 수학에 관한 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해서 백지로 제출하였다. 그리고 영어는 읽고 바로 해석을 하는 면접이었는데 다행히 영어 지문은 해석을 할 수 있었다. 그때 한 교수님이 물었다.
“수학은 백지를 냈는데 영어는 곧 잘하네?”
“수능을 준비하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입학 전까지 수학 공부를 한다면 수학도 잘할 수 있습니다.”
울산대와 동아대가 합격하고 나자 긴장이 풀렸지만 목표는 홍익대였기에 끝까지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수능을 치르게 되었다. 수능 결과는 성공이었다. 홍익대 최저학력기준을 맞췄지만 면접을 못 봤던 탓일까 불합격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기대도 하지 않던 인하대에서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처음에는 잘못 봤는지 알았지만 다시 봐도 합격이었다.
‘인하대학교 신소재 응용학과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가족들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나는 인하대에 갈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울산대에 가기를 원하셨다. 결국 부모님 뜻대로 울산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취업을 하는 친구들 학교에 입학하는 친구들 두 분류로 갈라졌다. 나는 대학교로 입학하게 되는 부류였다.
대학교를 가기 전 공대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대학 오티 같은 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가게 되니 더욱 설레었다. 공대 오티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과잠바도 지급받았다. 지급받은 과잠바를 입고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저녁을 먹고 장기자랑 공연을 보고 뒤풀이를 했다. 방에서 처음 하는 술 게임들을 배워가면서 술을 마셨다. 중간중간에 과 동아리를 홍보하는 선배들이 들어와서 술을 먹고 처음 만나는 친구들끼리 인사를 하면서 술을 먹었다. 태규랑 술을 먹으면서 끝까지 살아남았는데 그다음 날부터 집행부를 하는 과 선배들이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말했다.
“너네는 집행부로 들어오면 돼”
고등학교에서 기계과를 다니면 대학교도 무조건 공과계열로 선택해야 되는지만 알았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서 다시 한번 기계과로 입학하게 된 나는 많은 실망을 하였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대학교라는 곳은 청춘남녀가 잔디밭에서 기타도 치고 같이 밥도 먹고 어울려 다니고 하는 것이었는데 이 놈의 기계과는 마치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았다. 과 건물은 낡았고 언덕 위에 있었고 제일 중요한 남녀의 성비도 안 맞았다.
과 이름이 ‘기계자동차과’라고 해서 자동차에 관한 수업이나 실습을 많이 할 줄 알았다. 볼트를 직접 쪼으면서 자동차를 만들어보고 자동차 성능을 테스트하고 그런 류의 것들을 생각했다. 전혀 달랐다. 그냥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학교에 와버린 것이라고 말하는 게 그때의 내 상황을 표현하기에 딱 맞아떨어진다.
1학년 때 우리 과에서는 물리학, 미적분학, 일반화학, 물리실험, 화학실험 같은 과목들을 배웠다.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과목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공부를 해야 될지 감이 안 잡혔다. 실업계에서 진학한 친구들을 위해서 과에서 따로 보충수업을 진행해주었다. 미적분학과 물리학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어도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실제로 내 수준은 중학교 3학년에서 멈추어져 있었다. 나와 똑같은 상황이었던 태규와 함께 도서관에서 추가로 공부하기로 하였다. 새벽에 도서관에 와서 <수학의 정석>을 보며 공부를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학과 수업을 들을 때도 문제는 나타났다. 실업계에서 3년간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대학교 수업을 들으려니 너무 졸려서 수업을 듣질 못했다. 항상 졸았다. 항상 조는 덕에 리포트조차 놓치기 일쑤였다. 친구들에게 리포트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친구들의 리포트를 베껴 쓰고 가까스로 제출하고는 하였다.
학과 생활만 하기에는 학교가 너무 암울했다. 학과에서 모집하는 동아리는 제외하고 중앙동아리를 눈여겨봤다. 먼저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 있어하던 사진을 다루는 사진동아리를 가입했다. 직접 현상하고 인화까지 한다는 게 멋져 보였다. 그리고 영어연극동아리를 가입했다. 여기는 학교 동아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여자가 많다길래 가입했다. 태규도 나랑 똑같이 가입했다. 그리고 태규에게 말했다.
“동아리 생활 열심히 해서 인맥왕이 되어보자”
동아리 2개에 1학년 학과 생활까지 할려니 항상 술 약속으로 가득했다. 거기에다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까지 만날려니 몸이 2개라도 부족했다. 지금이야 ‘그냥 거절하면 되지 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거절을 잘 못했다. 모든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대학생활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바빠도 내가 선택했기에 재밌었다. 시간이 나면 동아리방에 가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아 그리고 난 당연히 학사경고를 받고야 말았다.
지금 1학년을 돌이켜 생각해봐도 술 먹은 기억, 동아리방에서 시간 때우다 선배들이 사주는 밥 얻어먹은 기억들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기회를 빌려서 그때 나에게 밥 사줬던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