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업계 고등학교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할 무렵 난 고등학교 3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상담시간에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저 실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하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는 것이 선생님들의 특명처럼 보이는 시기였기에 선생님도 적잖이 당황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된다고 하셨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저 실업계고등학교에서 내신관리를 잘해서 대학교를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극구 반대를 하셨다. 실업계에 가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게 어머니의 말씀이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도 괜찮은 길이라고 내 길을 응원해주셨고 어머니까지 설득해주셨다. 부모님의 동의 사실을 담임선생님께 전하자 선생님께서는 부모님 면담을 신청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선생님도 설득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내신성적이 좋았기에 고등학교 진학 시 내심 장학금이라도 받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받지 못하였다. 입학식 날 선서를 하였는데 앞에 나가서 선서하는 친구가 보였다.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각 중학교 통틀어서 내신 1등이라고 하였다.
고등학교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벌했다. 각 중학교에서 올라온 이름 모를 친구들이 잔뜩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1학년 때의 탐색전으로 인해서 서열이 나뉘므로 더욱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각 중학교 선배들이 찾아와서 몇몇 학교애들을 불러내기도 하고 선도부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하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뿌연 담배연기도 진기한 광경이었다. 중학교 친구들과는 반이 나뉘어서 나 혼자 다른 반이 되었다.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 하고는 금방 친해졌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는 매점을 가서 비빔면을 사 먹기도 하였고 수업을 땡땡이치고 피시방을 가서 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점심시간에는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알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되면 각 수업마다 공부할 분량을 정해서 나누어주었지만 그걸 공부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난 그래도 고등학교 오기 전 결심을 생각해서라도 하루 전 벼락치기로 공부하고는 하였다. 그렇게만 해도 반에서 5등은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공부했다면 1~2등 자리는 놓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공부하는 애들이 없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고등학교 오기 전 엄마가 말한 “분위기에 휩쓸려 공부하지 못할 거다.”라는 말이 적중한 것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체험학습으로 용접, 공/유압, 캐드, 선반/밀링을 선택할 수 있었다. 1 지망에서 4 지망까지 적는 거라 성적이 많이 반영됐다. 보통 캐드나 공유압을 1 지망으로 적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난 어쩐 이유에서였는지 용접을 1 지망으로 적었다. 기계과니깐 조금 더 기계스러운 것을 원했는 거 인지도 모르겠다.
2학년이 되면서 반장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반장이 하고 싶다고 얘기하자 친구가 반장 추천을 해줬는데 선생님이 불같이 호통을 치며 극구 반대했던 기억이 있다. 지각을 가끔 하던 나를 안 좋게 보고 계셨는데 반장선거하는 날에도 지각을 해서 그러셨던 거 같다. 2학년 선생님이 보셨던 나의 이미지는 불량학생이었던 것 같다. 2학년과 1학년 다른 점이 있다면 실습시간이 많다는 거였다. 실습시간이 되면 교복이 아닌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용접 부스로 가서 용접을 하였다. 2학년은 실습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공부랑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 주말에는 알바를 하였는데 학교 실습 작업복을 가지고 막일을 가곤 하였다. 막일은 몸이 좀 고되지만 돈벌이가 되는 알바였다.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주말 알바만 해도 패스트푸드점, 뷔페 알바, 막일까지 다양했다. 알바로 번 돈은 옷, 신발, 가방, 시계를 사는 것에다 사용했다.
주말에 일을 하고 오면 학교에 와서는 피곤해서 보통 잠을 자곤 했다.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읽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점점 더 공부랑은 멀어져 갔다. 그래도 놀기만 한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정보처리기능사, 워드 1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영어학원을 잠깐 다녔던 적도 있다. 인문계 학생들이 다니는 입시학원도 잠시 다녔던 적도 있다. 곧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걸 깨닫고 그만뒀다. 참 자유로운 생활이었고 행복했다.
우리 과에는 3개의 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친구들이 친하게 지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친구 광재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진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대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난 3학년부터 공부해서 대학교 한번 가보려고.”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한번 열심히 해볼래?”
서로 생각이 같았고 방향도 같았다. 같이 공부하기로 하였다. 학교 또한 교장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SKY 진학 대비반이라는 명목으로 방과 후 수업이 제공되었다.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멘토링 교육으로 소수정예 과목이 진행되었다. 우리의 전략은 영어와 직업탐구영역이었다. 국, 영, 수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자니 국어와 수학은 공부를 하기에 앞서 기초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영어는 기초가 부족했지만 상대적으로 시작하기에 가장 적당해 보였다. 영어 단어를 무작정 외우고 거기에 독해까지 되면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직업탐구영역은 실업계에서 배우는 내용이었고 실업계에서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광재랑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가는 중이었다. 계단에서 태규랑 마주쳤다.
“어디가 노?”
“내 이제 집에 가야지”
1학년 때 내 등수는 5등이었는데 항상 4등 자리에는 태규가 있었다. 문득 태규도 수능 공부를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수능 치려고 하는데 니도 해봐라”
“아니다. 난 취업하려고”
취업한다는 태규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고 말하고 수업을 갔다. 그리고 며칠 후 태규도 같이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다. 우리 3명을 포함해서 대학 진학에 뜻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학과 수업이 끝나면 수능 수업을 따로 진행하였다. 수능 수업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각자 멘토링 받는 수업을 들었다. 멘토링 받는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공부를 하려는 습관이었다. 책상에 앉아 있기가 가장 어려웠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1~2학년은 수업시간에 자고 마치면 알바만 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실업계에 가면 분위기에 휩쓸려 공부 못한다.”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골머리 앓던 시절 어머니가 얘기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