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학10년 24화

24.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냐? 사업이냐?

by 레저왕

방학이 되어 계절학기가 되면 공업수학을 신청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매번 계절학기마다 공업수학이 없었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 5학년 1학기를 신청하고 공업수학을 들어야 졸업자격요건이 되었다.


2017년 9월, 공업 수한 한 과목 때문에 난 5학년 1학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취업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취업계를 내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울산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일한다는 현대자동차에서 촉탁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은 돈으로 사업을 하던 일본에서 취업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자동차 촉탁계약직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면접을 하러 와라는 문자를 받았다.


삭발을 하고 있는 상태라 면접이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단체면접으로 이루어졌다.


“자기소개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관련 일 해본 사람이 있냐고 묻길래 미국에서 인턴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 후 면접은 촉탁직이 끝나고 나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였다.


“사업자금을 모아서 사업을 할 겁니다.”

“자신감을 되찾고 다른 직장에 지원해보겠습니다.”

등등 다른 면접자들이 말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모은 돈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싶습니다.”


분명 생각으로는 사업자금을 모으는 거라고 답변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세계일주란 말이 나와버렸다. 이어서 면접관은 면접하는 법에서 간단하게 말했다.


“면접은 자기 PR을 하는 곳입니다. 조금 더 PR에 집중들 하세요. 오늘 면접 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면접은 끝났고 며칠 후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전화로 받게 되었다. 교수님 사인을 받고 취업계를 냈다. 교수님은 수업을 빠지는 대신 책에 있는 예제와 연습문제를 전부 다 리포트로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현대자동차는 2교대 근무로 주간 야간 근무가 있는데 주마다 돌아가면서 근무를 했다.


일을 하면서 리포트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을 해야 되기에 교수님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묵묵히 해나갔다.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보통 알바들이 하는 일로 도어가 오면 도어를 고정시키는 홀더를 꼽는 일을 했다. 근데 내가 가고 설비가 새로 설치되어서 시간이 남게 되었다. 그 시간과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공업수학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한 달여쯤 일을 했을까 다른 공정 업무로 보내지게 되었다.


자동차 도장 업무로 가기 전에 비닐로 차체를 감싸는 작업이었는데 테이프를 뜯어서 준비해주는 일을 했다. 계속 반복되는 작업에 손가락 살갗이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공정 업무가 두 사람의 업무였다. 나를 2 공정 자리에 넣고 그로 인해 생긴 한 타임의 공백을 번갈아 가면서 쉬면서 일을 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아니 아주머니 아버지가 아닌 우리 사회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기간이 제한이 있는 촉탁계약직이기에 서러움을 찾으며 일을 해야만 했다. 정규직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고 촉탁직으로 일을 하게 되어 같은 공장 안에서도 서열이 나누어져 있게 되는 상황이 싫었다.

청년들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이유를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에 의해 일자리가 없어지게 된 것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는 아마 우리나라도 몇 년 뒤면 이웃나라 일본과 같이 일자리가 생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속한 세대들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피해 보는 세대는 어느 세대 일까 까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또다시 다른 공정 업무로 이동하게 되었다. 원래는 1차 벤더 회사에서 하는 공정 업무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포함한 촉탁직 4명에게 떠넘겨졌다. 실러를 도포해서 방음, 방수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며칠에 걸쳐서 막무가내로 배웠더니 얼떨결에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작업을 하면서 공장의 대량생산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인해서 대량생산을 하게 되었다. 예전 호주에서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도입되어있는 양 공장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돈을 벌 때와 한국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된 공장에서 돈을 버는 것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호주에서는 공정 업무의 강도에 따라서 시급이 측정되어 있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든 작업, 위험한 작업이라면 돈을 더 많이 받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작업이라면 시급이 낮게 측정되어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한국은 공정이 더 어렵던 쉽던 돈을 똑같이 받았다. 그래서 쉬운 일은 보통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나 흔히 말해 줄을 잘 서는 사람, 아니면 인맥이 좋은 사람들이 하곤 했다. 아무리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더라도 호주와 같이 능력으로 자기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공장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그런 것이라면 내 의견은 무시해도 좋다. 조금 더 표시가 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공업수학 리포트를 하여서 제출하였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5학년이 끝났다.


졸업작품도 공업수학도 어느 것도 내 졸업을 막지는 못하였고 그렇게 2008년부터 2018년까지의 대학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야 되는데 일단은 사업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내 졸업식날 대학교 앞에 복합 문화공간을 오픈할 계획을 하고 실천으로 옮겼다. 겨울 방학 동안 일이 끝나면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다만 플랜 B로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도 틈틈이 했다.


일본에서의 사회경험이 더 필요할지 아니면 사업을 했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0


대학교를 졸업하며 썼던 글들.


2018년도에 발행을 해야 했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대학 10년> 이란 책으로 기획하고 썼던 글 들을 브런치에 다 옮길 수 있는 걸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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