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학10년 22화

22. 그렇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by 레저왕

“안녕하세요. 저는 <프리한넘들의 프리랜서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오재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친구와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였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못 찍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거라고는 이 블로그가 전부이지만 바디 프로필을 촬영해주신다면 확실하게 홍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댓글이 달렸다.


“한번 연락 주세요.”


그렇게 스튜디오와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디 프로필을 찍으려 하였지만 바디 프로필을 찍기에는 몸이 많이 부족하였기에 그냥 블로그를 위한 콘셉트 촬영을 하며 바디도 찍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저희는 조금 특별하게 찍고 싶어요. 자유를 열망하는 죄수의 콘셉트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촬영 당일이 되었다. 촬영은 예상과 다르게 아주 재밌었다. 사진작가님이 우리의 생각과 콘셉트를 너무나도 잘 알아주셨기에 재밌는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버킷리스트에 있는 촬영을 끝내고 나니 그 행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3개월간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울산에 내려왔다. 이제는 학교 복학을 다시 생각해야 될 때였다. 4학년 1학기는 해외인턴쉽으로 대체된 터라 4학년 2학기로 복학해서 기계과의 공업 수학과 졸업작품 그리고 조금의 디자인 학점을 채우면 됐었다. 난 디자인 수업을 듣고 계절학기를 통해서 공업수학을 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복학을 하려니 선 복학이라는 제도 때문에 서류를 제출해야 된다고 하였다. 서울에 있을 때 그 얘기를 들었는데 제 때에 제출하지 못해서 복학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결국 한 학기를 강제 휴학당하고야 말았다.

학교 복학 준비에 맞춰서 모든 걸 준비하고 있었던 터였다. 어느 날 국제교류원 공지를 보고 나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번에 동아리를 만들건대 외국인 도우미도 오래 했고 국제교류원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나보고 회장을 맡는 게 어떻게냐고 권유하셨다.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기에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말했다.


회장이 돼서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지원자들 면접을 보는 일이었다. 지원한 사람들의 이력을 보고 외국인 도우미들과 함께 면접을 실시했다. 그렇게 8명의 멤버를 뽑았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동아리라 모든 걸 갖추어야 됐다. 예전 사진동아리에서 임원진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먼저 조직을 구성했다. 회장, 부회장, 총무, 학술부, 홍보부, 문화부, 복지부로 나누었고 각 자리에 멤버들이 들어갔다. 이로써 울산대 외국인 교류회가 창설되었다. 동아리의 이름은 어느 날 갑자기 나왔다. 머리에 떠오르는 Hang out with us(우리 같이 놀자)를 줄여서 HOW.U(하우유)가 어떻냐고 말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이름이 동아리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동아리를 조직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은 청소였다. 예전 사진부 회장을 했을 때랑 동일하게 청소가 가장 시급해 보였다. 우리가 사용하게 될 글로벌 라운지를 가장 먼저 청소하고 가구 배치를 새로 했다.


그리고 울산대에 오는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으므로 많은 활동과 더불어 이벤트를 기획하였다. MT, 핼러윈 파티, 영화의 밤, 발담금, 한글 벗, 식문화 페스티벌, 체육대회 등을 기획하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핼러윈 파티이다. 다른 행사들과는 다르게 일 년에 딱 한 번만 진행하는 행사라 그런지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갔다. 글로벌 라운지를 핼러윈 분위기가 나도록 꾸미고 코스튬을 할 수 있도록 분장 도구들을 준비하고 행사 전 리허설까지 해보기 위해 일요일 모이기도 하였다. 행사 당일 리허설과는 다르게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지만 100여 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인원들이 모여서 핼러윈 파티를 즐겼다. 그 이후 핼러윈 파티는 하우유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얘길 들으니 한편으로 뿌듯했다.


하우유와의 한 학기는 금방 지나갔다. 한학 기간 글로벌 라운지에서 근무를 하며 일본어 공부와 시간이 나면 틈틈이 책을 읽었다. 퇴근을 하면 헬스장으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헬스 트레이너로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한 학기, 그리고 겨울 방학까지 지나갔다.


서울에서의 생활 뒤 바뀐 게 있다면 블로그의 힘이었다. 서울에서의 1인 미디어, 그리고 마케팅을 위한 기나긴 여정 끝에 토털 30만 명이 들어왔던 블로그는 200만 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친구와 나는 블로그를 이용해서 블로그 제안서를 만들어서 다른 사업체에 제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서 피트니스 쪽으로 아주 유명한 한 기업과 컨택이 되었다. 친구가 보낸 메시지 덕분이었다. 울산에서 한번 미팅을 하기로 하였다. 그때부터 수십장이 되는 블로그 사업에 관한 제안서를 만들고 환영의 인사로 미니 현수막을 만들기도 하고 나름 많은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미팅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그 기업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블로그에서 위탁 판매하는 형식 그리고 협업하는 형식으로 마케팅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밥을 먹고 카페로 옮겨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목표가 뭐예요?”

“저희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일주를 가는 게 목표입니다.”

“두 분이서 그런 목표를 같이 가지고 있어서 열정이 넘치시나 보군요.”

“1인 미디어는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나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부의 추월차선>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때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저희와 협업을 하실 분들이 아니에요.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랑 같이 일을 하시는 게 어때요?”


얘기를 나누시던 대표님이 갑자기 우리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다. 정말 뜻밖의 제안이라 한편으로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생활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답변드린다고 하였다. 친구랑 많은 얘기를 나누고 난 뒤 난 학교를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친구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여서 일을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2017년 첫 학기. 드디어 4학년 2학기로 복학하게 되었다. 디자인 수업으로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기계과 수업으로는 용접 공학을 들었다. 너무 거리가 먼 전공들이라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디자인 수업을 위해서는 발표해야 될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한 주마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줘야 되었는데 모든 작품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서 힘들었다. 이때는 오히려 정확하게 답이 나오는 공대생의 리포트 같은 게 그리웠다.


어느 정도 졸업작품 길을 찾아가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학교를 졸업하기 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생각났다. 평소 학교를 졸업하기 전 ‘꼭 한번 해봐야지 ‘ 하고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학생 강연이었다. 하우유를 같이 했던 오욱이와 함께 하우유에서 강연할만한 친구들을 찾았다. 그리고 연주, 주현이, 현우, 민정이와 함께 강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졸업작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학생 강연도 준비하고 여러모로 바빠서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지만 이제 곧 학교생활이 끝난다는 생각에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전시 날 전시와 함께 학생 강연까지 하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준비해서 이게 잘될까 생각도 했지만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다. 평소 남들 앞에서 발표도 잘하지 못하던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고 뿌듯했다. 그리고 모든 짐을 날려버린 것만 같아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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