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학10년 21화

21. 부의 추월차선을 읽고

by 레저왕

미국 인턴생활을 하면서 <부의 추월차선>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나도 책에서 나온 말처럼 서행 차선이 아닌 추월차선으로 들어가 돈을 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다 내가 자고 있을 때도 방문자가 올라가는 블로그가 생각났다. 블로그는 내가 자고 있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언제나 방문자가 올라가는데 블로그와 같은 공간이 돈이라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잠이 오질 않았다. 블로그로 수익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꿈을 꿨는데 람보르기니를 타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너무 생생한 꿈이었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블로그로 수익을 내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국 인턴 생활을 끝내고 미서부 여행, 나이아가라, 쿠바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가장 편하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생각하던 1인 미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여행을 하면서 찍은 영상들을 콘텐츠로 만들어내서 유튜브로 올리려 했는데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상을 더 빠르게 편집하기 위해서는 더 빠른 장비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돈 30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데스크톱을 샀다. 그리고 친구를 설득했다.


“진짜 이번에 함 제대로 해보자 1인 미디어라면 해볼 만하다 아니가 인터넷 방송해서 유튜브로 업로드하고 블로그로 그거 홍보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유튜브는 이미 포화상태다”

“아니다. 아직 충분히 할만하다. 내 믿고 함만 해보자.”

“아니 난 뉴질랜드 워홀 하러 갈련다.”


몇 번이나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친구라 권유를 했지만 친구는 거절을 했다. 가까운 친구도 거절을 하니 난 이 길이 더욱 맞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몇 번이나 같이 인생을 살아온 친구에게 좋은 길을 안내해주고 싶었다. 호주 여행을 하러 간 친구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1인 미디어를 구축하기 위해서 밤낮 매달렸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보기도 했고,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마케팅에 관한 책을 읽었다. 네이버에서 하는 다른 플랫폼인 포스트, 폴라도 시도하면서 틈틈이 여행에서 찍어온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예정보다 여행을 빨리 끝내고 돌아온다는 거였다. 친구와 만났다. 난 내 방에서 컴퓨터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블로그 마케팅 배우고 블로그를 키우고 그걸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리고 우리는 아프리카로 방송을 찍어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거지. 그러면 유튜브가 수익을 내줄 거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친구에게 설명을 하고 바로 서울에 있는 창현이에게 전화를 했다.

“돼지! 병구랑 내랑 서울 가서 마케팅도 배우고 하려는데 네 집에서 같이 살아도 되겠나?”

“응 오너라”


돼지는 무리한 부탁에도 흔쾌히 수락하였다. 며칠 후 난 캐리어백에 데스크톱을 들고 병구랑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1. 몸짱 되기(프로필 사진 찍기)

2. 블로그로 돈 벌기

3. 1인 미디어 시스템 구축하기


먼저 미국에서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는 나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심화된 과정을 듣고 싶었는데 돈이 부족했다.


“돼지 오늘 강의 듣고 왔는데 심화 과정 들으려면 300이란다.”

“에 비싸네 듣고 싶더냐?”

“응 근데 괜찮아서 들으려고 근데 내 100만 원 밖에 없어서 병구한테 100만 원 빌리고..”

“어 나도 그거 듣고 싶은데 내가 100만 원 낼게, 네가 듣고 알려줘”


그리고 강의를 듣게 되었다. 모르던 내용들이 많았고 난 열심히 수업과정을 따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돌아와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면 책을 읽곤 하였다.


서울생활과 함께 난 기획가로서도 기획을 하나 하고 있었다. 나는 타투이스트에 관심이 많아서 타투를 찾아보곤 했었는데 광주에 있는 한 타투이스트의 작업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 타투이스트 수강 관련해서 문의를 하고 광주에서는 알바를 할 것이 있나 찾다가 “광주 세계 청년축제“에서 청년 기획가를 모집합니다 라는 문구를 발견하게 된 것. 그래서 우연히 서류를 접수하였는데 합격해버렸다.


기획 팀이름은 FOP(Fashion or passion)의 약자로 정했다. 예전 UCS사업을 할 때 만나게 된 경환이와 함께 같이 팀을 이루어서 패션쇼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경환이는 패션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난 기획이 한번 해보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500만 원의 예산으로 집행하였는데 우리는 서울에서 광주를 왔다 갔다 해야 됐기 때문에 집행비 중 교통비로도 꽤나 많은 돈이 나갔다. 서울에서 보통 미팅을 하였는데 가장 먼저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 건지 회의를 했다. 패션 토크쇼와 패션쇼 런웨이 그리고 모델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패션토크쇼를 진행하기 위해서 먼저 디자이너, 모델을 컨택하여 섭외를 확정 지었고 제품 지원을 받기 위해서 스폰 업체를 찾기 위해서 기업들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3개의 기업에서 제품을 지원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역 패션쇼를 위해서 고민을 하던 중 보통 대학교에서 의류학과에서 졸업작품이나 패션쇼를 한번 하고 나면 쓰이질 않는 의상들이 생각났다. 페이스북에서 의류학과 사람들을 찾아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패션쇼에 쓰일 의상을 가까스로 확보를 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의상은 있지만 무대에 올라 설 모델이 없었던 것.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한 일반인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신청하는 일반인들이 너무 적었다. 적어도 12명 이상은 되어야 공연이 되는데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광주에 있는 한 모델 아카데미에 전화를 하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끝내 모델 아카데미의 모델 지망생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패션쇼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축제 첫째 날 프리마켓과 원데이 클래스, 패션쇼 런웨이를 진행하였고 둘째 날은 패션 토크콘서트를 진행하였다. 다행히 모든 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아주 멋진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생활에서 제일 최우선이 되었던 헬스 아니 자세히 말하자면 멸치 탈출 프로젝트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른 몸을 유지하고 살았다. 미국에서의 식습관 때문에 복부만 비만인 형태의 몸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꼭 몸짱이 되어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서울에 있는 돼지는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무료로 헬스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친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수업하는 시간대를 피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가곤 하였다. 그렇게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름 흡족할만한 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를 찾아봤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사진 찍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3개월간의 서울 생활이 끝났다. 바디 프로필 촬영에 대한 아쉬움은 계속 남아있었다. 울산에서라도 촬영을 할까 싶어 검색을 하던 중에 울산에 있는 한 스튜디오의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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