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일상
요즘 여름은 무척 덥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더위에 관해서는 부연 설명 따위 필요 없는 도시다. 대프리카라는 말이 대중적이라는 게 그 증거다.
그래서 봄이 되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해끗대며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에어컨 리모컨을 잡을 때가 되었다 싶다. 초여름부터 틀기 시작해서 한여름에는 거의 매일 풀가동이다.
그런데, 한 여름밤 다들 자고 있는 조용한 집안에서 생각을 해보니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긴 있다. 바로 애들 자고, 남편도 자고 조용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다.
그때는 그냥 선풍기로 버텨도 하나도 덥지 않다. 왜냐? 선풍기 앞에만 진득하게 붙어 있으면 되니까. 그 시간만큼은 내가 선풍기 앞 망부석이 되어 있어도 되는 시간이니까. 행여 선풍기 바람이 가서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도 되는 일 없이 온 바람을 정면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하나도 덥지 않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특히 그럴 수가 없는 것 같다. 이것 해줘, 저거 해줘, 먹을 거 줘야 해, 입히고 닦아줘야 해. 선풍기 앞에 진득하니 앉을 있을 여유 따위 없다. 그 선풍기가 내 얼굴을 인식해서 따라다니는 첨단 인공지능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런 선풍기가 생기면 참 좋겠다. 생체인식도 막 돼서 내 얼굴만 쫓아다니게. 안구건조증이 오려나?
어쨌든 한 여름밤 선풍기 앞 나는 자유를 찾는다. 책도 보고, 설레는 감성의 드라마도 보고. 가끔 아이와 같이 있다 드라마의 키스신이라도 나오면 이제 알 거 아는 나이인 아이 때문에 은근슬쩍 채널을 돌리지만 그땐 그러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 화면이 뚫어질 듯 가까이 본다. 아이한테는 맨날 TV 가까이서 보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이 아이러니함이 자유의 백미다.
이제 여름의 더위가 꺾이고 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이제 선풍기 대신 가을밤의 귀뚜라미 소리가 내 자유의 상징이 되어줄 테지. 이렇게 또 여름이 간다.
선풍기.
너는 무심하게 왔다리 갔다리.
모터 소리를 내며 바쁘지도 느리지도 않게
정해진 곳만 왔다 갔다 한다.
젊은 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를 발산하려
이곳저곳 서성이던 내가 이제는 집안, 집 밖, 정해진 곳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딱 가능한 보폭만큼만 움직이는 것처럼 너 또한 나 같다.
한 여름밤, 날 닮은 너를 붙잡고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네 앞에만 서면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