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비움.

나만의 진리

by 꽃구름

요즘 난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욕심 많은 삶을 살고 있다. 내 인생에 이런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즘 내 일상은 이러하다.

둘째 아이가 이제 곧 돌이 되는 이 시점에 젖먹이 육아와 6세 큰 아이 치다꺼리가 주된 일상이며, 주말에는 가까운데라도 꼭꼭 빠지지 않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육아 시간 외 나의 개인적인 모임은 두 개, 글쓰기로 인한 생산적 활동 하나, 동네 엄마들 모임 하나 + 시시때때로.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곤 이 자유의 시간에 뜻있는 활동을 뭘 할까 고민하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로 책을 선택했다. 책 욕심은 많아 잔뜩 사놓으면서 완독 하는 독서는 몇 없는 내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서 지역 맘 카페에서 독서모임을 찾아보았었다. 근데 어째 가까운 지역 내 모임이 하나도 없어서 답답한 맘에 직접 만든 모임이 벌써 3년이나 지난 나름 장수 모임이 되었다. 이 독서모임은 지금 둘째가 곧 첫 돌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독서라는 훌륭한 취미생활을 평생 잃고 싶지 않으므로 치열하게 참여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때론 너무 책이 읽기 싫고, 벼락치기로 눈이 빠질 것 같은 나날들을 맞이하면 회의감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난 이 독서모임을 놓을 생각 자체가 없다. 나를 글쓰기로 인도해준 고마운 모임이기도 하고, 독서란 평생 친구를 함께 공유하는 이 모임이야 말로 나를 살아있게 하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은) 소소한 부업이라 할 수 있는? 생산적인 글쓰기를 하는 중이다. 이 생산적인 글쓰기가 나를 가끔 사지로 몰아넣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다.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다음은 동네 엄마들 모임.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인데 청소년 수련원 미술수업을 아이들끼리 같이 듣게 해 주다가 친해져 곗돈도 모으고 있는 모임이다. 몇몇은 이사 가서 잘 보지 못하지만 같은 동네 사는 엄마 두어 명은 어린이집 데려다 주곤 맘 맞으면 늘 커피 한잔, 밥 한 끼를 함께 한다. 이사 간 엄마들까지 해서 다 같이 보는 건 이제 두 달에 한번, 동네 엄마들은 시시때때로. 육아 동지로 든든하게 있어주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 모임이다. 몇 년 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슴속에 품은 후부터 나는 일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글로 풀어내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일상의 소소함에서 얻은 나만의 진리가 좀 더 정리되기를 바랐고, 그 영감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길 바랬기 때문에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운이 좋게도 정말 좋은 분들이 함께 해주고 있고, 이 모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글을 공유하며 더 깊은 결속력을 느끼는 모임이다.


지난주,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나는 처음을 넋두리로 시작했다.


"아, 일상을 소재로 글 쓰는 거 너무 어려워. 쓸수록 더 어려운 것 같아."


그 말에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멋있는 동생이 말했다.


"언니,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어서 더 어려운 거 아니에요? 욕심이 생기니까 어려워지는 거 아닐까요? "

"음. 그런가?"


나는 되물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런가? 처음에 일상을 소재로 쓸 땐 술술 말하듯 잘 써졌는데, 글 몇 편을 쓰고 난 뒤부터 더 어렵게 느껴지고 막히는 구간들이 생겨났었다. 그 원인은 욕심 때문이었던 걸까?


그때부터 난 '욕심'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또 글쓰기 주제는 [ 비움 ]이었다.

비움. 나의 일상에 무엇을 비워야 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비울 것은 무궁무진하다. 살 빼면 입겠다고 몇 년째 처박아둔 청바지, 필요 없는 가구 부품, 습한 우리 집에 불필요한 가습기 등 물건부터 쓸데없는 두려움, 불안, 화 같은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까지 비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비움'을 생각했을 때 난 '욕심'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일상들이 가끔 버거울 때가 있긴 했다. 그래서 안 하던 감기도 치르고, 수유 중이라 약을 안 먹고 버티다가 더 심해져서 결국 양약의 도움을 빌고 있는 중이라 더 그렇게 느꼈나 보다.

하지만 이 모임들이 버거울지언정, 지치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요소요소 하나하나 성심을 다해하려는 중이다.


지금 하는 딱 요정도 까지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물컵에 물이 가득 찬 듯 넘치지도 흐르지도 않게 딱! 입구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더 뭔가를 한다면 넘쳐흐르고 말겠지만.


그래서 생각해보면 이 모임들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닌 내 마음 가짐의 문제인 것 같다.

잘 해내고 싶다는 열정을 넘어, 남들보다 꼭 잘 해내고 말리라는 욕심 때문에 나는 버거워졌다. 이 욕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욕심, 그게 꼭 불필요한 감정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욕심을 냄으로서 더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하며 다가가는 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욕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내 인생에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내게 맞는 삶의 방향으로 항로를 틀었을 뿐 본격적인 항해는 시작되지 않았다. 마치 이제 바다로 나갔는데, 앞으로 어떤 항해를 하게 될지 꿈에도 모르면서 보물섬을 찾아 돌아오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성급하다.


욕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더니


욕심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이라 한다.


그래. 나는 이 뜻을 보며 다시 깨닫는다. 내 일상을 기록하는 이 하찮은 글에 남들보다 잘 쓰도록, 어떻게 하면 잘 써보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을.

분수에 넘치는 기대와 기교를 부리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모임들에 내가 성실히 임할 뿐, 더 잘하려고 돋보이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 그게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분에 넘치는 무언가를 탐내기 시작하면 그건 내게 독이 되어 온 몸에 퍼진다.

마치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욕심에 빠져 아이를 다그치고, 화냈을 때처럼 말이다. 이 무분별한 욕심이 연약한 내 아이에게 독이 되어 엄마나 아이의 관계가 마비 상태가 되는 것처럼. 그때 난 엄마가 된 스스로가 혼란스러우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아이의 감정을 세심히 살피지도 못하면서 좋은 부모가 되려 했다. 그런 허황된 욕심이 독이 되어 나와 아이에게 퍼진 것이다.


욕심의 처참한 결과에 대해 경험해본 난 이제는 두 번 실수하지 않고 방향을 잘 설정할 생각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잘 키워야 돼!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 돼! 하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엄마로서 그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에 대해 성실하게 고민할 것이고, 글 쓰기에 있어서도 남들보다 잘 써야 돼!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그저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두도록 말이다. 욕심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놓치는 일이 없게 하고, 내 능력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기보단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발산할 기회가 되었을 때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실력이 바탕되지 않는 열망은 욕심일 뿐이니까.


내 인생 가장 바쁜 생을 살고 있는 요즘,
내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가고 있는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비움은 바로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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