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나만의 진리.

by 꽃구름

두 달 전쯤 가을에 코로나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서고, 우리 지역 확진자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아 시원한 가을맞이 갈대밭에 간 적이 있었다.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고 탁 트인 야외였기에 마스크를 꼼꼼히 잘 쓰고 우리 가족들은 나들이에 나섰다. 도착했을 때 끝없이 펼쳐진 가을 갈대밭에 노을이 내려앉고 있어 절경을 이루었다. 우리 외에도 마스크를 잘 챙겨 쓴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많이도 갈대밭을 구경하러 와 있었다.


남편과 딸 둘, 우리 네 가족은 갈대밭이 잘 보이는 곳에 사진 프레임처럼 만들어진 포토존에 앉았고, 나는 연신 셀카를 찍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네 식구 꾸역꾸역 비좁게 맞추기엔 돌도 되지 않은 둘째 아이는 움직여댔고, 첫째는 좀이 쑤셨으며, 우리 부부는 통통했다. 멋있는 갈대밭 앞에서 네 식구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사진 찍는 데에 늘 비협조적이던 우리 남편도 그날은 갈대밭 운치가 좋았는지 웬일로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거기에 탄력을 받은 나는 순간적인 용기로 지나가던 중학생 딸과 모녀로 보이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부탁을 했다.


"저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 내게 그 질문은 흔하게 여행지에서 한 번의 용기로 얻을 수 있는 단체사진을 위한 대사였을 뿐,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흔해빠진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내 질문에 그 엄마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아, 제가 그 핸드폰을 만져도 괜찮은 걸까요?"


아차!

내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수치심과 동시에 깨달음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네네. 그렇겠네요. 안 되겠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돌아서자 그제야 우리 남편도 "아, 맞다"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마스크를 끼고 다닌 나머지 지금 서로 간의 접촉을 금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인 것을 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다시 네 식구 꽁기꽁기 프레임에 넣어보려 애썼고, 멀쩡한 단체사진에 대한 아쉬움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코로나는 이렇게 우리에게 낯선 이의 지나가는 잠시의 친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우린 한 해 동안 그런 시대에 살았다. 처음엔 이 상황들이 빨리 지나가겠지, 그저 독감처럼, 신종플루처럼 잠시 고생하고 말겠지 했고, 도무지 끝나지 않는 코로나에 분노했고, 계속 이어지는 코로나에 무력해졌으며, 무력함을 넘어서니 이제 체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하고, 덤덤하게 외출 시 꼭 마스크를 챙기고, 실내에선 무조건 KF 마스크를 챙겨 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기분 좋은 가을바람과 좋은 풍경에 잠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고, 낯선 이에게 닿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줄로 착각해버렸다. 기분 좋은 꿈에 취해 망각해버린 것이었다.


요 근래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그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나들이는 다시 기약 없이 대기 중이고, 아이의 어린이집도 휴원 하고, 외출도 할 수 없어졌다. 다시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요즘 우리 지역에도 꽤 많은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가게에서 계산을 할 때에도 서로의 손끝이 닿기만 해도 서로가 찝찝해진다. 의심하게 되고 마스크가 생명줄인 양 더 꼼꼼하게 밀착하여 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였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TV를 보고, 함께 뒹굴뒹굴하며 보냈다.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에게는 메시지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기원했다. 심지어 오늘 보니 거의 1년간 만나지 못한 모임도 있다. 멤버 중 한 명과 나 둘 다 아이가 어려서 연말쯤 한번 보자 했는데 다시 코로나가 심해지니 볼 수 없게 되었다. 내년에도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크리스마스인데도 평범한 하루와 같은 오늘을 겪으며 나는 코로나 시대에 대해 생각했다.

이 질병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 혼자가 돼. 누구와도 교류하지 말고 고립되어 있어.] 하고 악마의 속삭임을 하는 존재인 것 같다. 마치 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아닐까? 자각하지 못하는 무증상자는 아닐까?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라고 등 떠미는 악마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낯선 이는 물론이요, 아는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린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아, 물론 불행 중 다행으로 좋은 점도 한 가지 있긴 하다.

가족들과 똘똘 뭉쳐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게 된 것. 그것이다.

예전에는 아이에게 외부활동을 시켜주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했기에 외부의 자극이나 활동들에만 집중했다면 강제적으로 그걸 못하게 되면서 오히려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자매는 아직까진 사이가 참 좋다. 내년이면 7살인 언니는 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바쁘고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아서 동생은 좀 귀찮아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 코로나가 엄청 심할 때 어린이집이 휴원 했기에 옆에서 동생이 옹알이하고, 뒤집고, 기고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더 정이 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도 둘째가 행동을 따라 하거나 단어를 따라 하면 첫째는 그렇게 그게 신기한지 몇 번이고 시켜보곤 엄마 아빠에게 보고를 한다. 코로나가 이 자매 사이의 끈끈함을 선사해준 건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

사회적인 것을 차단하라 속삭이는 이 코로나라는 놈을 버티려면 우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내가 생각한 방법은 그거다.

[ 적응하되 익숙해지진 말자. ]

마스크를 쓰고, 가족 외 사람들과의 교류가 차단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므로 그것에 잘 적응하되 고립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듯 익숙해지진 말자.

친지, 친구, 지인들에게 메시지로라도 전화로라도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낯선 이를 의심하고 피하고 싶은 이 감정에 익숙해하지 말자.

언젠가 우리가 모두 코로나를 이겨내고 마스크를 던져버릴 그 날을 위해서. 희망을 품고 이겨내 더불어 살기 위해서. 지금은 잠시 멀어지고 헤어져 있자. 하지만 승리의 그 날이 올 때까지 사람의 따뜻한 정을 가득 품고 대기하고 있자! 충만한 사랑을 가득 가지고 그들을 만날 날을 두근대며 기다리고 있자!


그게 이 불행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내 삶을 위해 찾은 방법이다.


20201225_192141.jpg 집에서 즐긴 크리스마스.






악마의 속삭임.


너는 혼자 있으라 한다.

너는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한다.

너는 나가지도 말라고 한다.

너는 사람을 그리워하지 말라고 한다.

너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으라 한다.


그래. 나는 널 이길 수 없으니

영혼을 팔 순 없으니

네 말대로 한다.

너를 볼 순 없으니

네 말대로 한다.


하지만 네 뜻대로 우린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자의로 고립되어 우리는 스스로를 서로서로 지켜낼 것이다.

너의 속삭임 때문이 아닌,

우린 서로를 위한 배려로 그 길을 행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연말 모임은 취소해주세요!


혼자 하는 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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