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내가 쓴 글이 확실한 결과물을 내는 시험대 위에 섰는데 내가 기다렸던 시간은 길고 그 시험대 위 내 글의 반응은 미미했다. 처음 그런 형태의 글을 내보는지라 글이 노출되는 시기가 명확한데도 나는 조바심이 났고, 매일매일의 그 조바심들이 쌓여 불안감과 내 실력과 자질에 대한 의심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에서 코로나로 휴원이 결정되어 첫째, 둘째 아이 내내 데리고 집에만 박혀 있다 보니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을 치솟았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남편은 늘 가는 운동을 나가 없었고, 아이 둘은 나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보채기 시작했다. 이미 전날인 토요일부터 아빠는 티브이 보고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져도 가만 내버려두면서 엄마인 나는 한시도 쉬질 못하게 무언가를 요구하자 힘에 부쳐 아이에게 짜증을 냈었다. 자기 전 책 읽는 것도 , 씻는 것도 아빠가 해주겠다는데 엄마랑 굳이 하겠다는 첫째 아이의 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나?'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아침부터 반복되는 요구. 남편은 평화롭게 나가는 데 나만 왜 이렇게 시달려야 되나 싶었다. 그래서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불만 섞인 짜증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내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았고, 콧바람도 쐴 겸 내가 좋아하는 M브랜드의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드라이브 겸 다녀오면 좀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대충 옷 입고 얼른 다녀오자 했는데 아이들은 미적미적거렸고, 남편도 그에 호응하느라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채 앉아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둘째 아이 키를 재보자며 줄자를 찾았다. 그 줄자도 내가 정리한 터라 찾아 꺼내 주었더니 남편은 대충 아이를 눕혀놓고 키를 재보곤 아이 연령에 맞는 평균 수치를 찾아봤다. 그러더니 말했다.
"키가 5프로네. 작다 작아. 못 먹고 있었구나."
남편은 가볍게 말하는데 난 그게 절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이가 맨밥 외에는 잘 먹질 않아 고민이 많던 차였는데 그런 말을 듣다니... 마치 그 말에 (엄마가 제대로 못 챙겨줘서 네가 못 먹어서 못 컸구나) 하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우울하다 못해 그동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하며 도리어 조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앉아있었다.
처음엔 모르던 남편이 내가 묻는 말에도 대꾸도 없이 표정이 너무 안 좋자 알아차렸다. 남편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짜증만 내면서 도대체 왜 그러냐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처럼 따져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이 둘 다 우리 대화에 집중하고 있을 텐데, 그런 모습 보이기가 싫었고, 그냥 설명하고 이해를 바라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맘이었다.
"그럴 거면 자기 혼자 가서 사와. 내가 애들 보고 있을 테니."
남편의 불만 섞인 제안을 나는 덥석 받아들였다. 그땐 내가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는 차키를 들고 나와 자주 가는 M사 지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곤 최애 버거를 사들고 차에 와서 먹기 시작했다. 한입, 두입 먹으니 약간의 포만감이 들면서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고,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차 안에 '지오디의 길'이 울려 퍼졌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오랜만에 듣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너무 좋았다. 딱 내 심정을 대변하기도 했고, 추억의 향수에 젖으면서도 현실과 과거의 내가 겹쳐 보이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나는 오롯이 음악을 느끼고 있었다.그때부터 30분가량 쓸데없이 핸드폰 뉴스를 클릭하고 SNS 계정을 보는 것 말고 음악을 느끼며 머릿속에 지나가는 상념들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차 운전석에서 조용히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다 보니 독서모임을 통해 본 오베라는 남자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오베는 차 안에서 자살을 준비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 생각들부터 노래 가사, 책, 육아 이야기까지 30분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난 그 속에서 나를 나답게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
나에 대한 사색.
살면서 그게 얼마나 나를 나답게 하는지 핸드폰과 TV 같은 수없이 쏟아내는 매체들에 가려 모르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나 정보가 떠오르면 일단 핸드폰을 집어 들어 검색부터 하고 보니 정보력은 높아질지언정 정작 그 정보와 기억이 주는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 울리는 목소리를 정확히 듣는다는 것. 그건 나에게 해방감을 안겨주고 동시에 나아갈 힘을 쥐어주었다.
1-2시간의 짧지만 알찬 자유시간을 만끽하곤 나는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내가 느낀 서운함을 감정적인 서운함에 호소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정확히 이야기했고, 남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을 나누며 화해했다. 아이들에게 받는 시달림? 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내 역할, 엄마 역할이 아닌 나 스스로를 생각하며 편안해졌고, 그게 나를 조급하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주변 상황에 잠식될 것 같아 갑갑하고 화가 났던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사람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만의 철학이나 신념, 생각들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탐구가 필요한 존재. 그런 자기 탐구가 잘 되어야만 역할에 치여 버거워하지 않고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에 자기 전 나는 올 한 해 목표를 적어둔 다이어리를 펴서 두 가지 목표를 다시 썼다.
1. 일주일에 한 번 핸드폰 없이 살기.
2. 10분간 명상 및 사색하기.
이 두 가지를 말이다.
오늘은 시 대신 내 생애 가장 혼란스러웠던 20대 중반에 듣고 방구석에서 나를 펑펑 울게 했던 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