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없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by 꽃구름

저녁 반찬으로 감자볶음을 하기로 한 나는 냉장고에서 지난주 사둔 감자 3알을 꺼내 자르기 시작했다. 감자들은 모두 겉이 매끈하고 싹도 올라오지 않아 나는 만족스럽게 껍데기를 깎고 채썰기 시작했다. 한알, 두 알째 뽀얀 흰 속살을 드러내는 감자들을 반듯반듯 자르고는 전분기를 빼기 위해 물에 넣어두었다. 마지막 세 번째 감자를 자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자른 단면이 뽀얗지 않고 거뭇거뭇했다.


"흠. 속이 썩었네. 겉은 멀쩡한데."


나는 그 작은 감자에 그래도 덜 썩은 부분을 살려내고자 요리조리 칼로 갈라보았지만 아무리 갈라도 썩은 부분이 없는 곳은 없었다. 겉은 다른 것들처럼 멀쩡했는데, 속은 죄다 썩어 있었다. 그 감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갑자기 생각에 빠졌다. 근래 내 최대의 관심사로 인해 든 생각이었다.


겉은 번지르르 정상인 척하고 있는데, 속 안이 이리도 썩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썩은 감자를 보며, 요즘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정인이를 다시 떠올렸다.


내가 알기론 분명 입양 절차는 몹시 까다로운 줄 알았는데, 어째서 그 아이는 약 9개월 만에 온몸이 골절되고, 장기가 파열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 걸까?


겉은 좋은 사람인척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웃는 그들이 괜찮은 척, 멀쩡한 척했기에 아무도 그 안에 썩은 악마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정인이는 그 악마의 소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감자 세알을 꺼냈을 때 멀쩡했던 것처럼,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기에 나는 감자를 깎고 정성 들여 씻었다. 속이 썩은지도 모른 체, 멀쩡한 척하는 감자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아동학대 사건은 나에게 더없이 분노를 일으키는 발암적인 사건이다.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그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핑계로 그들이 행하는 학대를 보고 있노라면 분노로 몸이 떨려온다. 어쩌면 약하고 힘없는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는 감자로 인해 피어난 생각들을 조용히 정리하며 요리를 마무리 지었다.

아이들과 남편 저녁을 다 먹이고, 식탁에 앉아 진지한 자세로 어제 보낸 진정서에 이어 두 번째 진정서를 써 내려갔다. 사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도 너무 힘들까 봐 보지 못했고, 처음엔 진정서는 내가 안 보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내겠지. 하는 맘으로 분노는 하되 행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둘째 아이와 비슷한 미소의 정인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터트렸고, 아이가 죽기 전날 CCTV 영상 속 무력하게 앉아 있는 정인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펜을 들었다.


우리 둘째 아이는 이제 13개월인데, 참 잘 웃는다. 조금만 재미난 걸 반복해줘도 깔깔거리며 넘어간다. 얼마나 재미나다는 듯 웃는지, 그 미소를 들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아프면 울음을 팍 터트리고 세상 떠나가라 운다. 배고파도 나 죽어하며 운다. 잠이 와도 엉엉 운다. 그런 나이의 아이다. 하지만 장기가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울음 한번, 옹알이 한번 하지 않는 아이의 무력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분노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말 못 하는 약하디 약한 아이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우울해서 무기력해질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 답답한 마음에 진정서를 쭉 써 내려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내일도 저녁 반찬을 하고, 밥상을 치우고 나서 또 내 답답한 맘을 진정서에 써 내려갈 것이다.


#정인아미안해#우리가바꿀게




시는 없다.

아이를 추모할 뿐. 이 분노를 대체할 말을 찾기 힘들다.


아이는 없다.

가엾고 불쌍한 아이를 되살릴 수 없다.


인간성이 없다.

그들은 악마다.



제가 이 진정서를 쓰면서 7살인 첫째 아이에게 왜 이걸 쓰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동생과 같은 나이의 아이를 어른이 처참하게 때리고 학대했다는 이야기를 도저히 쉽게 할 수가 없더군요. 우리 곁에 평범한 모습을 한 악마가 숨어있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어요. - 나의 두 번째 진정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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