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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y 13. 2022

베란다 캠핑. 커피

커피 중독 이야기


요즘의 난 술 없이는 살아도 커피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실현하는 중이다. 빈 속에 커피부터 채우는 몸에 대한 혹사는 하지 않지만 밥 먹고 나면 어김없이 커피 머신을 켜거나 편의점에 가거나 둘 중 하나는 꼭 한다.


얼마 전에 전날 저녁쯤부터 두통이 시작되어서 두통약을 먹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도 내내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왜 이렇게 두통이 가시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약속에 나갔고, 옆 동네 친한 언니와 만난 자리에서 커피 수혈 한 방에 두통이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서 깨달았다.


내가 커피 중독임을.


커피가 안 들어갔다고 머리가 아프다고? 중독이면 심각한 거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커피를 끊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걸 안 마시면 머리가 아프니까.라는 핑계로 하루에 한두 잔 꼬박꼬박 커피를 챙겨 마시는 중이다. 전에 보다 더 열심히.

대학교 때 나는 커피를 못 마시는 학생이었다.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두근 빨리 뛰었고 그 느낌이 불편하고 싫어서 커피를 멀리했다. 커피 전문점에 가서는 꼭 생과일 주스나 요거트 음료 같은 걸 주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카페인 없이 못 사는 중독이 될 거라곤 상상치 못했는데.


학교는 의무감으로 다녔고, 공부보다는 에너지틱하게 노는 데 집중했던 순수했던 학창 시절의 나는 카페인 한잔에 심장이 두근두근 반응했지만 세상 풍파 열심히 겪고 배를 찢는 고통으로 내 안에 품은 새끼들을 꺼내고 나니 카페인쯤은 아무렇지 않을 만큼 강한 몸이 되었나 보다.


지난 주말, 카라반이 있는 친한 언니네가 캠핑을 간다고 해서 우리 식구들도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요즘 남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계획이 취소되었다. 가기 전날 생각해보니 아이들 각자 캠핑의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랴부랴 새벽 배송으로 시켜놓았었다. 약속이 취소되었지만 작은 테이블 하나에 작은 캠핑 의자 두개는 착실하게 문 앞에 배송되어 있었다.

그래도 새것을 풀어보는 묘미란 기쁜 일이기에 상자를 꺼내보았다. 생각보다 더 실용적이고 예뻤고, 사이즈가 우리 베란다에 딱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부랴부랴 베란다를 청소하고 함께 캠핑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아이들은 원래도 베란다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펴주니 더 신이 났다.

산이 보이는 풍경에 컵홀더까지 있는 작은 테이블과 캠핑의자가 있으니 카라반 부러울 게 없었다. 하하.

아이들은 의자 두 개에 앉고 나는 목욕탕 의자를 가져와 셋이 앉아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감성에 취해 새로 받은 머그컵에 얼음 잔뜩 넣은 아메리카노를 타 왔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시경 노래를 골라 틀었다.

“넌 떠나도 난 그곳에 고여 있었지. 괜찮아 괜찮아. 지나간 일인걸.”

감미로운 성시경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물론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소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ㅋㅋ 나의 감성을 위해 그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내 베란다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둘 캠핑 놀이를 지겨워하며 자리를 이탈했다. 그제야 나는 목욕탕 의자를 벗어나 창문 밖 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놓고 15층 높이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은은한 커피 향이 입안에 감돌고 얼음의 시원한 냉기가 목을 타고 내려와 내 몸 구석구석 카페인을 보충시켜 주었다.

그래. 이게 사는 묘미지. 휴식이지.

터울 나는 둘째도 이제 젖먹이 아이를 완전히 벗어난 요즘 나는 우리 가족 모두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이들은 구김 없이, 하지만 좌절에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긍정의 힘을 갖기를,

어른들은 자신의 내면을 항상 돌아보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행복이  뭔지 알기를.


식구, 가족이라는 게 그런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나이도 다 다르고, 피는 나눴지만 다 다른 개개인이다. 그런 개개인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것,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그 시간들을 공유하고, 때론 부딪히고, 때론 좌절하면서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아닐까.

그래서 가족은 개인사에서 쉽게 이루고도 쉽게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되는 것 같다.


가족, 가정.

인생의 숨 가쁜 변화들을 맞이할 때 온전한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낀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어른들, 엄마와 아빠의 행복감, 만족감 역시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다른 모습을 보이는 동안 어른들 역시 늘 성장하며 그 나이에 맞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의자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제안했다.

여기서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 아빠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아이들이 잘 노는 것만큼, 일상에 치인 어른들이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는 커피 한 잔에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며 생의 의지를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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