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Mar 07. 2024

내 안의 불안

나이 마흔에 하는 감정 읽기.

아이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유아일 때는 스스로 약을 들고 제법 잘 먹던 아이였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서 핸드폰도 생기고, 엄마가 모르는 자기와 친구들만의 사생활도 생기다 보니 자아가 점점 강해지면서 쓰고 인공적인 단맛이 나는 약을 극도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맛이 이상해서 너무 먹기 싫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지쳐 엄마아빠처럼 알약으로 먹을래 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10살 나이에 알약 먹는 게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니 잘 먹는 것도 몇 번, 다시 또 약 거부가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시작한 마른기침감기를 옮아버린 첫째에게 약 한번 먹는 걸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진이 다 빠졌다. 지난주 바쁜 일을 매듭짓고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아우성쳐대서 둘째를 재우다 같이 자버렸다. 자기 직전에 첫째에게 식탁에 약 놔두고 먹기 좋게 잘게 부수어 놨으니 꼭 먹고 자라는 당부를 미리 해둔 채로.

새벽녘, 깨보니 첫째가 언제 잠들었는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다 확인한 약봉지가 내가 올려둔 그대로 식탁에 놓여있자 조금 화가 났다. 그렇다고 새벽에 깨워서 먹이면 안 그래도 먹기 싫은 약, 잠결에 더 난리 칠 것 같으니 깨울 수도 없었다. 심하던 기침이 조금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낫지 않은 상태인데 점심, 저녁 약까지 다 안 먹어서 [불안] 한 감정이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내 걱정대로 다음날부터 다시 심해지기 시작한 기침.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아서 폐렴 의심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밤에 잠자는 와중에도 아이가 깨서 기침을 해서 나도 본인도 잠을 잘 자지 못하기 시작하자 나는 아이를 꾸짖었다.

"엄마가 그래서 약 꼭 먹으라고 했지? 네가 먹기 싫다고 안 먹어서 이렇게 다시 심해졌잖아."

나는 아이에게 쏟아냈다. 안 그래도 기침 때문에 괴로운 아이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화를 냈다. 나는 병원에 다시 가서 기침 패치까지 받아왔고, 그래도 기침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제 태권도를 다녀온 아이의 기침이 더 심해져 있자 속이 상하면서 왜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부글부글 화가 끓었다.


첫째는 유독 나와의 마찰이 잦았다. 밖에 나가선 한없이 모범적이고, 생각도 깊다는 아이는 엄마가 하는 무슨 말에도 싫어가 먼저 나온다. 이건 다 엄마인 내 말투가 지시적이라서 그런 거다. 하는 반성을 해보지만

지각할 거 같은데 느긋하게 춤을 추고 있는다거나, 거르지 않고 먹어야 빨리 낫는데 약을 안 먹을 궁리만 한다던가 하는데 그냥 두고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 잔소리를 달고 살고 아이는 인상을 찌푸린다.

아이는 약을 먹지 않으니 눈에 띄게 증상이 심해지는 걸 겪어 보더니 그제야 내 말에도 토 달지 않고 잘 먹기 시작했다.

그래 겪어봐야 알지. 아이가 자기 의견을 적극 피력하는 것은 잘 크고 있다는 증거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가도 나는 종종 그런 아이를 보며 [불안]이라는 감정에 시달리곤 한다.

감기가 심해져서 큰 병원에 가야 하면 어쩌지, 지각해서 선생님께 만년 지각생이라고 찍히면 어쩌지, 언니가 엄마한테 하는 싫어를 동생이 그대로 따라 해서 버릇이 없어지면 어쩌지,

아이가 나 같은 사람이 엄마라 인성이 바르게 자라지 않으면 어쩌지.

까지 발전하고 마는 불안.

불안한 마음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하면 나는 인상이 구겨지고, 일상이 힘겨워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버거워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우리랑 있는 게 행복하지 않은가' 생각하며 더 떼를 쓰고 악을 쓰고 울어대기 시작한다. 이 불행의 도돌이표를 하고 나면 나는 인생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삶은 힘든 걸까.

왜 육아는 나에게 이렇게 힘이 든 걸까.

기쁘게 기꺼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한가.


그렇게 한없이 혼자 깊이 구덩이를 파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불안함]이 만들어낸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끝도 없는 불안이 나를 나 스스로 몰아세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아이가 심각하게 아플 거라는 내 망상도, 지각생이라고 찍힐 거라는 단정도,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데 엄마인 내가 되려 아이에게 프레임을 씌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나의 불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은 고사하고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채로 놀기만 바빴던 나는 아이를 낳고 배우자가 생기고 가정살림의 대표가 되면서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아이를 기댈 데 없이 홀로 키우면서 참 많은 실수를 했다. 그래서인지 첫째 아이를 볼 때의 나는 늘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아이가 나 때문에 잘 못 자라면 어쩌지?

화내는 엄마를 보면서 나쁘게 자라면 어쩌지?

하는 불안 때문에 나는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과 행복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인 나다.

내가 불안하면 아이들도 불안하고, 남편도 불편해할 만큼 나는 집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니까.

나는 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기로 결심했다.

그 감정으로 인해 파생되는 생각들이 결코 진실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

감정에 휘둘려 일상이 괴로워지고 힘겨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나이 마흔에야 드디어 내 감정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