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먹는 것엔 비건을 하지 못하지만, 물건 특히 생활용품들에서는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하려고 꽤 노력한다. 이 분야는 노력할수록 재밌고 풍부한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소위 '할 맛'이 난다.
'비건'은 꽤 넓은 의미로 쓰여서(그렇다고 합니다, 저도 잘은 몰라요... ^_ㅠ), 성분이 환경에 무해하지 않거나 동물원료를 쓰지 않았거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거나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거나 등등 다양하게 대입해 사용할 수 있다 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내가 이 물건들을 살 때 생각했던 '비건'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예스, 동물원료와 성분 부분은 크게 찾아보지 못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셋팅 중인 것이다... 데헿
글을 쓰려고 쭉 정리해보니, 내 욕실은 꽤나 비건하다.
대나무칫솔
비건 욕실 입문 단계라면 대나무칫솔부터. 두 달에 한 번은 바꾸는 칫솔로 일년이면 6개의 쓰레기를 만드니 내 평생 쓰는 칫솔은 대체 몇개나 되려나.
플라스틱 몸통의 칫솔이라면 500년 이상 썩지 않을테니 내가 죽고도 몇백개의 칫솔이 지구에 묻혀있는 꼴이다.
그러니 자주 쓰는 소모품인 칫솔의 비건을 시작해보기를 추천하는데, 대나무칫솔은 사용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칫솔모의 디테일한 모양과 사이즈가 칫솔질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분명있겠지만 애초에 난 그 면에서 크게 관여가 없기도 했고 요즘 대나무칫솔이 워낙 많이 나와서 대의 모양이나 칫솔모의 모양과 재질도 다양해서 선택폭이 넓다.
다만 너무 싼 걸 쓰면 그 값을 하니, 적당한 가격대로 사기를 추천한다.
+대나무는 정말이지 잘 썩는 것이, 다 쓰고 욕실청소용으로 쓰려고 구석에 쳐박아둔 대나무칫솔이 검정 덩어리의 형태로 발견되었다... ^_ㅠ...
비오투름 클렌징밀크
1차 세안으로 클렌징밀크를 쓰는데, 비오투름이라는 브랜드의 클렌징밀크가 동물실험도 하지 않고 괜찮다고 해서 구매했다. 대대대용량인데, 사실 세정력에선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좋은 클렌징밀크를 아신다면 추천 좀.
아로마티카와 시드물 클렌저
아침 세안과 저녁 세안 폼을 따로 쓴다. 아침에는 순하고 거품이 적은 시드물의 효소 클렌저로, 저녁에는 쫀쫀하게 거품이 잘나는 아로마티카 클렌징폼으로 2차 세안한다.
아로마티카는 만족, 시드물은 그닥이다. 원래 아침 세안으로는 아주아주 오랫동안 세타필 클렌저를 사용했는데, 그 씻은 것 같지 않은 애매모호한 세정력이 아침에 쓰기에 딱 좋은데 시드물은 세정이 잘된다... 세타필은 동물실험을 하는 브랜드라서 사용하지 않고. 세타필같은 느끼한(!) 아침용 세안제를 아시는 분들의 적극 추천을 기다립니다.
이솝 바디비누
샤워할 때 필요한 소모품은 대부분 비누만 쓰고 있는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비누를 써보니 좋은게 너무 많다. 당연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니 좋고 가성비 면에서도 너무 좋다. 비누 하나를 이렇게 오래 쓰는 줄은 몰랐다. 가끔은 지겹다고 생각이 들만큼.
그래서 비누는 이것 저것 써보며 가격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사치스러움은 비건과 맞지 않지만, 나는 나를 너무 쪼지 않는 사람이기에...
적당한 잔향과 가격에 대대만족하면 추천하는 이솝 비누. 비누 하나에 3만원인데, 약간 속은 것이 일반 비누 사이즈의 3배 크기다. 잘라 써야 하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가격면에선 엄청난 것.
쫀쫀한 거품도 맘에 든다.
러쉬 샴푸바/아로마티카 샴푸바와 린스바
러쉬 샴푸바는 골라 쓰는 맛이 있다. 하지만 향이나 가격면에서 그닥 훌륭하지는 않다. 러쉬 바디들은 안그렇던데 샴푸바는 유독 굉장히 인위적인 향이 많이 난다.
러쉬보다 추천하는 건 아로마티카인데, 샴푸와 린스 모두 성능이 좋고(특히 린스, 전에 동구밭 린스바를 쓰고 너무 실망했는데 아로마티카 린스바는 정말 괜찮다) 허벌한 걸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이다.
비누받침대
요 똑같은 비누받침대가 욕실에 네개 붙어있다.
세면대 옆에 손비누용, 샴푸바용, 린스바용, 바디비누용.
물기가 빠져서 비누가 물러지지 않아 좋고 생각보다는 잘 안떨어진다. 생각없는 동생이 퍽퍽 비누를 올려대는 손비누용만 두세번 떨어졌다...ㅎ
쿤달 바디워시/샴푸린스
비누 쓴대놓고 왠 플라스틱 용품 행진인가 싶겠지만, 위에 말한 생각없는 동생을 위한 것이다.
나의 비건 라이프를 굳이 동생한테까지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이치기는 해도 눈높이와 속도 차이는 있는 것이고, 강요했을 때 더 거부감이 생기기 쉬운 영역이라 생각한다.
살림이라곤 모르고 생활용품 한 번 지 손으로 사 본 적이 없는 동생은 욕실용품도 내가 사다둔 걸 쓰면 그만인 애인데 그래서 샤워용 제품은 쿤달 라인으로 구매해뒀다. 굳이 비누를 쓰게할 생각은 없고 다만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라 쿤달로 구매. 가격도 저렴하고(이게 중요하다... 내 거 아니니까요...ㅎ) 국내 제품이라서 앞으로 자주 구매할 것 같다.
러쉬 슈렉팩
원래 시트팩을 주로 했는데, 시트팩도 모두 미세 플라스틱이라 꺼려진다. 한 땐 1일 1팩을 하고, 로드샵에서 시트팩을 싹쓰리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들떠도 안본다. 게다가 머리카락에 시트팩 에센스가 잔뜩 묻는 것도 마침 싫었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러쉬 슈렉팩을 쓴 이후론 시트팩은 샘플로 받지 않는 이상 전혀 쓰질 않는다. 샤워 중에 도포해두고 마지막에 씻어내기만 해서 너무 간편하고 나랑 잘 맞는다. 슈렉팩 쓴 날은 얼굴이 환-하다.
러쉬 제품은 용기도 재사용 플라스틱인데다 성분도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고 동물 실험도 하지 않아서 선호한다. 좋은 원료를 쓰는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슈렉팩은 나랑 너무 잘 맞다. 벌써 몇통째인지...!
히말라야 바디로션
대용량으로 퍽퍽 바르기 좋은 바디로션을 찾다보니, 히말라야도 동물실험하지 않는 브랜드란걸 알게 됐다. 향에 예민해서 그렇게 향이 좋다는 비오템 바디로션을 사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며 구매했다.
때로는 흔들리기도 한다. 더 좋은 향, 더 좋은 패키지, 더 편리한 것이 지천이니까.
그런데 나의 경우는 비건 제품들을 쓰는 것에 큰 의미나 결심 보다도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정을 붙이기에 더 좋았다.
지금껏 내가 몰랐던 비건 제품과 브랜드들을 알아가는게 즐겁다. 내가 만들어 낼 임팩트에 대한 뿌듯함은 덤이고.
욕실에서 하는 비건, 대단한 욕심 말고 재미로 시작해보길.
내 다음 재미는 치약에서 찾아봐야지. 고체 치약에 도전! 하지만 어느 집이나 그렇듯 집에 쌓인 치약이 향후 몇년용이라 언제 도전할 수 있을 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