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
한참 동안 누워 천장을 본다. 옅게 퍼진 실빛에 전등 그림자가 기울어져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지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불을 뒤척였더니 부스럭 소리가 난다. 한 밤의 몸 냄새가 배어있다. 고개를 들어도 전등은 켜지 않는다. 오롯이 무채(無彩)의 세계로 잠적한다.
보이지 않으니 미련이 없다. 사방이 흐릿하니 마음이 선명해진다. 흐릿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예쁘고, 멋있다. 흐릿한 세상은 모양이 아닌 존재를 이야기한다. 새벽은 여기에서 그들이 가진 색(色)마저 빠뜨린다. 선명함을 추구하는 세계의 반대 차원을 본다.
컴퓨터 화면을 봐야 할 때에만 안경을 쓴다. 안경을 쓴 자리에 자국이 남는다. 자국이 남은 채로 그냥 둔다. 앞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던 사람이 내 코에 '자국이 남았다'라고 말한다. 아 그래요. 희미한 미소로 콧잔등을 문지른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시 안경을 써야 한다. 머무르는 것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안경을 벗는 것, 그리고 새벽에 잠적하는 것은 필터를 씌우는 행위다. 사진을 더욱 예쁘게, 선명하게,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 필터를 씌우는 것과 반대로 더 흐리게, 더 보이지 않게 한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경을 쓴 내가 봤던 것들의 이름과 형태를 지운다. 세상을 흐릿한 흑백 화면으로 본다. 그렇게 더 예쁜 것들을 본다. 그저 존재하는 것들을 본다.
* 밑줄 : 문장 내용 중에서 주의가 미쳐야 할 곳이나 중요한 부분을 특별히 드러내 보일 때 쓰는 문장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