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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May 22. 2021

불이 꺼진 새벽엔 모든 것이 흑백이 된다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

글을 쓸 때 유독 새벽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새벽은 침착하고 신비롭다. 새벽 공기는 매번 활기 넘치는 아이들처럼 팔랑이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적막하지만 쓸쓸하지 않다. 어둑하지만 캄캄하지 않다. 가끔 얕은 잠을 자다 눈이 떠지는 날이면 나는 커튼에 일렁이는 하얀빛의 물결을 본다. 사방이 흐리고 모든 것이 흑백이다.


한참 동안 누워 천장을 본다. 옅게 퍼진 실빛에 전등 그림자가 기울어져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지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불을 뒤척였더니 부스럭 소리가 난다. 한 밤의 몸 냄새가 배어있다. 고개를 들어도 전등은 켜지 않는다. 오롯이 무채(無彩)의 세계로 잠적한다.


매일 쓰던 안경을 벗었다. 렌즈를 끼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채로 그냥 둔다. 사방이 흐리고, 모든 것이 흑백인 것처럼 다가온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 해가 정수리에 내리쬐는 날에도 홀로 고요히 새벽을 맞는다. 따뜻하다.


보이지 않으니 미련이 없다. 사방이 흐릿하니 마음이 선명해진다. 흐릿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예쁘고, 멋있다. 흐릿한 세상은 모양이 아닌 존재를 이야기한다. 새벽은 여기에서 그들이 가진 색(色)마저 빠뜨린다. 선명함을 추구하는 세계의 반대 차원을 본다.


컴퓨터 화면을 봐야 할 때에만 안경을 쓴다. 안경을 쓴 자리에 자국이 남는다. 자국이 남은 채로 그냥 둔다. 앞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던 사람이 내 코에 '자국이 남았다'라고 말한다. 아 그래요. 희미한 미소로 콧잔등을 문지른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시 안경을 써야 한다. 머무르는 것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안경을 벗는 것, 그리고 새벽에 잠적하는 것은 필터를 씌우는 행위다. 사진을 더욱 예쁘게, 선명하게,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 필터를 씌우는 것과 반대로 더 흐리게, 더 보이지 않게 한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경을 쓴 내가 봤던 것들의 이름과 형태를 지운다. 세상을 흐릿한 흑백 화면으로 본다. 그렇게 더 예쁜 것들을 본다. 그저 존재하는 것들을 본다.


사람들은 날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평소 그대로인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색을 보정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려 한다. 그런 것처럼 나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기로 했다. 색을 지우고, 보여주는 것을 더욱 흐릿하게 보기로 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대로를 보기로 했다.




1990.10.09

새벽 동이 틀 무렵

오래된 책에 밑줄*을 그으며


* 밑줄 : 문장 내용 중에서 주의가 미쳐야 할 곳이나 중요한 부분을 특별히 드러내 보일 때 쓰는 문장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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