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날씨가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5월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슬슬 반팔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행여나 서늘할까 챙긴 얇은 외투는 가방 안을 두텁게 했다. 학기가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새로 산 알림장은 여전히 빳빳했고, 그 옆으로 연한 살구빛 무지 공책과 필통이차곡차곡 들어있었다.
하늘은 마냥 맑다고 할 순 없지만,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나뭇잎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학교는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집에서 생각보다 일찍 나온덕에 나는 봄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우리 동네는 14층 정도의 조금 낮은 아파트 단지에 유치원 하나, 놀이터 두 개, 상가 하나가 전부인 곳이었는데, 매일 아침 보는 굴뚝(긴 원기둥 모양의 건물에서 연기가 나기에 우리는 그냥 굴뚝이라고 불렀다. 이를 중앙난방 아파트의 특징인 '연돌'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스무 살 때였다.)을 지나면 우리 집에서부터 아파트 단지의 절반을 가로질렀다는 뜻이었다.
그 단지의 끝엔 제법 오래되어 보이는 꽃집 하나가 있었다. 상가 옆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공간. 사실 상가와는 관련 없는 별개의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건물처럼 잘 어울렸다. 꽃집 앞엔 늘 예쁜 꽃들과 테이블 위에 조그맣게 놓을만한 가시 없는 선인장들이 놓여 있었는데, 주인은 항상 뒤쪽 가게 안에 들어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에 그곳을 지날 때 이상한 걱정을 하곤 했다. 이렇게 밖에 아무렇게나 놓으면 누가 그냥 가져가는 건 아닌지. 마치 슈퍼 앞에 덩그러니 놓인 아이스크림 박스처럼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예쁘고 소중한 것을 당당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주인장의 자신감이 부럽기도 했다.
"안녕, 내 이름 기억해?"
꽃집 앞에 서있던 내게 그 아이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뒤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기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더듬어버렸다. 어제 조별 수업을 시작하면서 같은 조가 된 아이인 듯했다. 아마 등교를 하다가 혼자 멍하니 꽃집을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몇 초 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른 후 나는 간신히 그 아이의 이름을 생각해내어 대답을 마쳤다. 그러자 그 아이는 '제법이네'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그날 학교까지 매우 천천히걸어야만 했는데, 괜히 그아이앞을 빠르게 지나갔다가 또 마주칠까 부끄러워뒤로 멀찍이 떨어졌기때문이다. 결국 그날 나는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음에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다.괜스레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책상에 앉아 가방을 뒤적거리는 그 아이에게 뭐라 할수 있는 말은 없었다.
대부분의 초등 여학생들이 그렇지만 그 아이는 나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 아이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곧잘 했는데, 내가 급식으로 나온 우유팩을 열지 못해 낑낑거릴 때면말없이 손을 내민 뒤 대신 입구를 열어주곤 했다. 선생님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옆 친구와 떠들고 있을 때면 날카로운눈빛으로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면뒤늦게선생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입을 닫는 게 내 역할이었다. 나는 낯을 가리고 얌전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산만한 편이었고, 그 아이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모범생이면서도 밝고 친절한성격이었다.
이 외에도 그 아이는 나보다 잘하는 것이 많았다. 나보다 달리기도 빨랐고, 키도 더 컸다. 공부는 비슷했지만 내가 실수로 몇 개 더 틀리곤 했다. 그러다한 번은 체육시간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달리기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이지만 그래도 '내가 남자인데!' 하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나 보다. 결국그날 두 번의 달리기 시합에 모두 완패한 나는 몰려오는 창피함을 억지로 참아내야 했다.주변의 친구들과 선생님마저 '에휴, 쯧쯧'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뒤로 그 아이는 내게 질투와동경의 대상이 됐다.성격도, 공부도, 피지컬(?)도 나보다 앞섰다. 내가 반에서 있는 듯 마는 듯한 '일반 학생 1'이었다면 그 친구는 일명 '잘 나가는 학생'이었다. 기껏해야 초등 저학년에게무슨 그런 것이있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사실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 사이에 알게 모르게 풍기는 아우라는 있는 법이다.그런 아이는 이후에도 책을 잘못 가져오거나, 준비물을 빼먹는 등 여러모로 부족했던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그 '완벽한 아이'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떤 남학생 하나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누가 누굴 좋아하거나 화장실에만 오래 있어도 놀림거리가 되는 시절이었기에, 그런 소문은 반에서상당한 화젯거리가 됐다. 선생님이 항상 함께 있는 저학년 교실이었기에 대놓고 놀림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쉬는 시간에 기회가 되면 호시탐탐 반 아이들끼리 말이 오갔다. 소문에 느린 편이었던 '일반 학생 1'인 나에게까지 그런 말이 들려올 정도였으니, 이미 소문은 제법 퍼진 듯했다.
"야, 너 그거 알아? OO이 쟤 좋아한다던데."
쉬는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게 문득 이런 말을 건넸다. 나는 괜스레 부끄러워져서 '어 그러냐'하고 표정을 애써 감추려 했다. 나름 외모도 이쁘장한 아이였으니 남자애들끼리 놀다가 누군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아이는 그런 난데없는 소문을 매우 불쾌해했고, 그 뒤로 나를 보는 표정도 달라진 듯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밝았던 아이는 같은 여자 아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뒤로 꼭꼭 숨었다.
그 무렵 한동안 유지되던 조 편성이 바뀌었다. 나와 그 아이는 서로 다른 조가 되었고, 같은 반이었어도 접촉할 일이 별로 없어졌다. 나도 이제 우유팩을 혼자서 딸 수 있었고, 매번 실수로 틀리던 뺄셈도 제법 능숙해졌다. 그렇게 그 아이의 웃는얼굴과 말없이 건네는 손을 볼 일은 점점 사라졌다. 방학이 다가올수록 한 때 반을 뜨겁게 달궜던소문도 금방시들해졌고, 처음 그 아이를 만난 꽃집에서의 강렬한 기억도 조금씩 불어오는 가을바람처럼 덤덤해져 갔다.
시간이 흐르고 2학기 여느 점심시간, 나는 모처럼 학교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며 놀았다. 운동장엔 나뿐만 아니라 온 전교생들이 꽥꽥대며 어지럽게 뛰어다녔고, 나는 제법 정수리를 따갑게 비추는 가을 햇볕을 피할 겸 시원한 물을 찾아 홀로 학교 수도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형체가 나타나 내 오른쪽 옆구리와 안면을 세게 내리쳤다. 나는 털썩 엎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고, 눈을 떴을 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덩치가 큰 고학년과 몸을 부딪힌 듯했다. 하지만 그 고학년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최선을 다해 몸을 일으켰지만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 몸이 욱신거리는 탓에 고개를 드는 것조차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웅웅 거리는 머리와 옆구리를 움켜쥐고 비틀비틀 양호실로 향했다. 그저 살고자 하는 집념 하나만으로 평소에 잘 갈 일도 없던 양호실이 몇 층에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돌이켰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학교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 보도블럭에 다다랐을 때, 근처에서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느껴졌다. 바로 그 아이였다.
그때 당시 상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무나 오랜만에 그 아이를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순간 나는 마치 어떤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아이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슬슬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인것 같았다.그 아이는 홀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몰라. 그냥 넘어졌어."
고학년이 나를 치고 도망갔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없었네 등 자질구레한 말들이 떠올랐지만 도로 집어넣었다. 아픔 때문에 이것저것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괜한 자존심 때문에 참은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제 살았다!' 하는 감탄이라기보단 양호실까지 홀로 먼 길을 가야 하는 억울함과 외로움을 위로해주는 감정이었다.
결국 그날 그 아이는 다친 나를 부축해 양호실까지 바래다주었다. 양호 선생님은 혹시나 내게 뇌진탕 증세가 있진 않은지 체크하더니, 까진 무릎과 팔꿈치에 빨간 소독약을 발라주었다. 상처가 꽤나 따끔거렸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없는 듯했다. 괜한 헛웃음이 나왔고, 치료를 다 받았을 즈음에 나를 데려다준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를 부축하고 양호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반에 돌아갈 시간이라 먼저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반에서 그 아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가끔 발표를 하거나, 번호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교과서를 읽을 때 그 아이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었던 것 외에는 따로 만날 일이 없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아예 다른 반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차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 아이의 모습은 서서히 뇌리에서 잊혔다.
시간이 더 흘러 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한창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절 나는 그 사이트에서 낯익은 친구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중엔 초등학교 동창들도 몇몇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예전 그 아이의 이름만큼은 찾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뒤져봐도 똑같은 공백뿐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가 SNS를 잘하지 않는 성격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초등학교 때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단순한 내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이다. 길다면 긴 6년의 초등학교 시절 동안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이 이야기만큼 애틋한 감정이 드는 것도 없다. 꿈같기도 하고, 마치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한 기억이라,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나도 그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리고 그때 보여준 미소와 친절함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분명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