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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May 09. 2021

나는 우울한 것이 좋다

주의 : 과도한 TMI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밤에 찾아오던 우울감이 불현듯 사라졌다. 매일 밤마다 그랬던 건 아니고,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지만,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들어오면 더욱 그랬다. 사람을 만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의 격차에서 오는 단순한 외로움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놈은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와 마음을 두드리곤 했다.


우울감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그놈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건 어젯밤 친구와의 전화통화 덕분이었다. 친구는 요즘에 자신이 우울한 것 같다며 나는 어떠냐고 되물었고, 나는 그런 물음에 도리어 놀라고 말았다. '아 맞아, 내가 그랬었지.' 최근 한 달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딱히 우울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항상 기뻤던 것은 아니고, 그냥 'So-so'한 느낌이었달까.


우울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아쉬움이 찾아왔다. 사실 나는 그 우울감을 싫어하지 않았다. 흔히 '센치'해진다고나 할까? 행복은 아니지만 그 우울감이 가져오는 느낌이 좋았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창문을 바라볼 때의 그 감정. 사방이 죽은 듯 고요하고, 방 안의 불 하나에 의지한 채 부정적인 감정을 곱씹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앨범이 [Life Appearance]였으니, 우울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간혹 그 우울감 때문에 남몰래 방 안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우울감과 함께 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일상에서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단순한 나쁜 생각과는 달랐다. 우울감은 좀 더 깊은 고독/부정/상실을 가져왔고, 나는 그런 감정들을 기록했다. [Life Appearance]를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밤새 그런 감정에 휩싸여 글을 쓰다 지쳐 잠든 후, 다음날 아침이 됐을 때 그 우울감이 사라져 버리는 거였다. 일반적인 나의 상태로는 도무지 그런 감정이 이어지지가 않았고, 결국 작업의 뒤를 이으려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그놈을 기다려야만 했다.


어쩌면 내가 경험했던 우울감은 일종의 '버닝' 상태와 비슷했던 것 같다. 활활 불타오르는 감정 그 자체랄까. 사랑이 활활 불타올랐던 옛날을 추억하는 오랜 연인들처럼, 나도 그런 감정을 가져다준 우울감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변태 같기도 한데,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우울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그나저나 우울감은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는데, 우울감을 떠나서 애초에 감정 자체를 느낄 겨를이 없어졌다. 19년도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확실히 우울함을 느끼는 빈도가 줄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노곤함이 가장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 자체가 줄었고, 특정한 감정을 오롯이 느낄 여유도 없어졌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려면 그에 대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어야만 한다. 이전엔 그러지 않아도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마치 굉장한 능력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어쩌면 여느 현대 사회의 지겨운 어른 한 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음악 선생님이 '너 직장 다니더니 달라졌다. 그나마 감성이 장점이었는데 이젠 그것도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의사가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사실 나도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을 잃은 로봇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그렇게 유별나지 않은 'So-so'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코로나 블루' 시대에 우울감이 사라졌다는 것도 모자라 우울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이번 글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긴 글렀다. 문득 이전에 글 모임에서 쓴 이종(異種)이라는 글이 생각나는데, 나 자신을 방 안에 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텃새라고 지칭하면서 '다가오는 언택트 시대, 곧 텃새의 시대가 온다!'라고 외치는 발칙한 글이었다. 그렇다. 사실 요즘 시대는 히키코모리가 최고다. 블루는 개뿔. 집돌이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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