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추천

아무도 아닌

처절의 세계에서 묵묵함을 강요받는 것

by 유재우

나는 소설을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글에는 항상 글쓴이의 일부가 들어있기에, 내용이 픽션이더라도 그 안에는 작가의 경험, 생각,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세계관)이 들어있다. 내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생각하는 이유다. 그렇게 그 '사람'을 들여다본다.


황정은 작가의 [아무도 아닌]은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지만,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쉽게 마주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불행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행은 모두에게 다르게 작용하는 법이고, [아무도 아닌]은 그런 인간들의 불행을 담았다.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얽힌 사연을 딛고 살아가며, 독자는 이런 불행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또는 주변 친구들에게서 이와 '같은’ 사연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설령 주변에 있다 한들, 그런 불행의 사연은 본래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기 마련이라, 특별한 노력을 거치치 않고서는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무도 아닌]의 등장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유는, 그들의 행동, 대사, 그리고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능 또는 욕망을 무서울 정도로 상세히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환경 또는 에피소드를 막론하고 세상을 관통하는 주제다. 나는 책에 수록된 단편인 ‘상행’에서는 쓸쓸함, ‘양의 미래’에서는 죄의식, ‘상류엔 맹금류’에서는 거리감, ‘명실’에서는 그리움, ‘누가’에서는 피해의식,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는 소중함, ‘웃는 남자’에서는 단절감, ‘복경’에서는 처절함을 느꼈다. 물론 그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군상들을 단순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처절의 세계에서 묵묵하게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마치 우리들처럼.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상류엔 맹금류, 86p)


우리는 모두 똥물을 뒤집어쓴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압박감일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불행일 수도 있고, 스스로의 이기심 또는 자책감에서 오는 죄악일 수도 있다. 그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질투하고, 그러다 지치면 혼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비슷한 사람일수록 서로를 원망한다.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이 정도로 서로를 미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견딜 수가 없는 게 아닐까요?
내 맛인데 니 맛이기도 해. 니 맛인데 내 맛이기도 하고.
내가 왜 너하고 같지?
같지 않은데 같은 맛이라면 결국은 같은 건가?
(복경, 197p)


복경에서 한 백화점의 직원들을 ‘한 개의 주머니에 담긴 채 뒤섞이는 존재들’이라고 표현한 주인공은 그들이 서로 비슷하기에 미워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직원들은 서로를 질투하거나 미워하고, 여기에 진상 손님들까지 행패를 부린다. 심지어 주인공은 현재 소파를 찢은 범인으로 몰려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탈출할 구석은 없어 보인다. 사실 복경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주인공에게 탈출구를 허락하지 않는다. 탈출구가 없는 문학. 나는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황정은 작가의 글이 몰입감 있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치밀하게 나열된 감정 묘사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세계관 자체가 탈출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자살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떼어낼 수가 없다.


글쓰기 모임을 2년 넘게 운영하면서 나는 회원들에게 줄곧 탈출구가 없는 글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처절한 글, 불행한 글을 극찬했고 행복한 글, 즐거운 글은 상대적으로 터부시 했다. [아무도 아닌]은 그런 탈출구 없는 글의 대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화가 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늘어놓는 문체를 사용했지만 –그래서 몇몇 글은 자칫하면 따뜻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 안엔 지독한 어둠이 들어있다. 비관이다. 세상에 대한 비관. 글에서 매우 역한 동족의 냄새, 인간의 냄새가 났다. 복경의 주인공처럼 나는 이 책을 덮고 웃어야 했다. 잔인했다.


문득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값비싼 원목 책상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허름하고, 항상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는,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같은 곳에서 써야 할 글이다. 작가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그런 캄캄한 방을 꺼내놓는 재주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의 일부분이자,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자화상 말이다.


막막함이 쏟아졌다. 이 책을 현실에 대입한다면 절대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이 글은 탈출구 없는 문학의 대표다. 등장인물을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저 버텨내거나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처절한 세계에서 묵묵함을 강요받는, 그런 자들의 이야기다.


내가 여기 틀어박혔다는 것을 아는 이 누구인가.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생각해왔다.
(웃는 남자, 185p)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체념하는 것뿐일까. 추억하는 것뿐일까.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이겨내야지, 하고 또 나아가는 것뿐일까. 계속 나아간다면 그 끝은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연 가고 있는 것은 맞을까. 아쉽게도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 과정 속의 단편을 이야기할 뿐이다. 아마 시간이 흐르고 이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옅어졌을 즈음, 나는 또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세상의 실체를 외면하고 그냥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무도 아닌,을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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