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타고 난 존재
하늘은 유독 흐렸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승용차의 라이트들과 가로등 불빛이 뒤섞여 어지러웠다. 그때가 몇 날 며칠 몇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여느 때처럼 지나가버린 것 같다. 이제 와 보니 '나'라는 사람의 자격이 겨우 그 정도뿐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벌써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한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는 모습이, 두려워진다.
병상에 누워있는 친할머니를 뵌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게 되면서 돌봄 센터를 왔다 갔다 하다 나중에는 요양원에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요양원 프로그램을 하다 넘어져 골반을 다치셨고 그렇게 몇 년이 더 흘렀다.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원을 들락날락하던 사람은 아버지뿐이었기에 나는 어렴풋이 그 정도만 전해 들었다.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왕년에 교도관을 하셨고 6.25 때 북한에서 넘어온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것뿐이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제사상에 남은 젊은 사진으로만 알고 있다. 간혹 아버지가 나의 모습을 보고 친할아버지의 골격과 식성을 닮았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물보다 진한 피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목소리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부를 닮았다는 것은 함부로 끊지 못할, 보이지 않는 질긴 연(緣) 같은 것을 회상하게끔 한다. 누군가 인간은 초월적인 너머의 세상에 향수를 느끼는 존재라고 했던가.
어쨌든 할머니는 그런 이유로 꽤나 오랜 시간을 배우자 없이 보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 사셨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대학생 때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부모님은 할머니를 한 집에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내게 기억나는 할머니의 모습은 같이 밥을 먹던 일이나 어렸을 적 사촌 형이 놀러 왔을 때 어리광을 부리며 함께 잠을 청했던 일 밖에 없다. 할머니는 보통 혼자 방에 있거나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정도가 전부셨다. 나중에 아버지가 방에 티브이를 놓아드린 이후로는 더 왕래가 없었다. 유독 답답할 때면 아파트 경로당 같은 곳에 나가기도 하셨지만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같은 집에 있지만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존재 같았다.
사실 우리 집은 고부갈등이 꽤나 심한 집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존재가 맞는 걸까. 단순 할머니뿐만 아니라 친가와의 관계 자체가 좋지 않아서, 현재는 연을 끊고 있는 상태다. 어차피 명절에만 조금 얼굴을 보는 사이였으니 나로서도 별 마음은 없지만, 어머니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불쌍하기도, 밉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나도 할머니를 비롯해 친가에 대해 별로 정을 주지 않았다. 사실 정을 줄 기회도, 필요조차 없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친할머니는 빼빼 마른 송장 같은 모습이었다. 해골이 되기 바로 직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으로 기억하는 할머니의 혈색 있는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같은 사람이 맞는 것일까. 다른 분을 잘못 착각한 것은 아닐까. 나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차올라서 몰래 복도로 나가 있었다. 병상 위 할머니의 모습에서 먼 훗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의 모습까지도.
치매가 심해진 할머니는 아들, 딸, 그리고 손주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괴로워 보였다.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시며 누웠다, 앉았다, 얼굴을 비볐다, 하셨다. 끊임없는 반복. 나는 그 행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굴레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래도 할머니의 손자임이 분명했다.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별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에 남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차오르는 감정이 이때껏 어느 것과도 달랐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다시 용기내어 들여다봤다. 간신히 붙어있던 단추 끈 하나가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화장을 하고 할아버지 산소에 할머니의 유골을 묻을 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봤다. 평소 죽음에 대해 의연한 듯 말해오던 아버지였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고 하셨다. 화장터에서 할머니가 남긴 것은 조그만 뼈 조각 몇 개뿐이었다. 그 뼛조각들을 태우고 나르는 기계가 은색으로 유독 차가워 보였다. 너무 미웠고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품공장처럼 의미없이 돌아가는 화장터. 이곳에 90년을 넘게 한 인생을 보낸 사람을 맡기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너무나 편리해서 잔인한 곳이었다. 함께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기도문이 귓가를 멤돌았다. 가공 처리된 할머니의 뼛가루는 손자에게 마지막 남은 체온을 전해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산소에 묻힐 때까지, 따뜻했다.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몇 날 며칠을 편히 가지 못하시고 앓다가 자식과 손주를 모두 보고 나서야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그래서 작별인사가 필요한 거라고 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보아야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거라며. 그 며칠 동안 할머니는 괴로운 와중에도 자식들을 기다리셨나 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눈물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면서. 이렇게 다 지난 글을 쓸 거면서.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12p)
눈물은 왜 짠가.
저자(함민복)의 출신 때문에 글에서 다소 향토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따뜻함으로 관통하는 문장들은 그런 사소한 경험의 차이를 넘어 다가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문장 중간에 인생에 대한 고찰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일품이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넓은 길을 오며 이 생각 저 생각 들던 것이
길의 깔때기, 골목길에 접어들면 압축되고 요약된다.
원래 삶은 살아가는 길의 모양을 닮는 것인지 모르겠다.
(길의 열매 집을 매단 골목길이여, 1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