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진심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생각이 많은 탓일까. 밤에 먹은 카페인 때문일까. 왠지 잠을 자기 싫은 밤은 소중하다. 평소 섣불리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준다.
창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만해도 새까맣게 불타던 도시의 아스팔트가 먹에 닿은 한지처럼 젖어든다. 지금처럼 잔잔히 내리는 비 소리는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자글자글? 타닥타닥? 비가 내리는 소리는 장작이 불타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가 오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가로등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위로 하루살이들의 그림자가 부딪친다. 툭. 투툭. 흔히 불빛을 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비를 피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네온사인 간판 불빛이 그 아래 진득히 고인 빗물 속으로 흘러내린다. 하루살이의 피. 흥건한 무언가. 속.
그렇게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으로 이어졌는지를 생각한다. 한 세대, 두 세대, 몇 세기를 걸쳐 도달한 모습. 빌딩과 아파트. 불. 돌. 옛날 사람들은 정말 이런 도시를 꿈꿔왔을까. 되고 싶은 모습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들은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 걸까. 무엇을 위해 매일 일생을 헌납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자각해보려했지만 결국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빗물처럼. 존재를 고찰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진심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진심 또한 사람이 지낸 세월만큼 변해가는 것이라면, 존재라는 것도 항상 변하는 것일까. 그래서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없었지만, 있을 수 있고, 있었지만, 없을 수 있는 것인가.
글을 쓰다 잠이 들었다. 카페인도 새벽 2시의 적막을 이겨내긴 힘들다. 선풍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나는 선풍기의 고장난 타이머를 습관처럼 맞춘 뒤 침대에 눕는다. 어차피 그것이 새벽 내내, 아침까지 돌아갈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직접 꺼트리기 전까지, 그렇게 윙윙 돌아갈 것이다.
아침에 마저 글을 마무리한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달력은 벌써 7월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는 항상 같은 자리를 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