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빗 babbit Dec 09. 2022

할머니와 짜장면

할아버지_기억나는 것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가족 누가 보더라도 똑같이 얘기했을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는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손을 잡아보라는 말에 눈을 질끈 감고 손사래를 치며 질색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징그럽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할머니는 할머니 방이 따로 있었다. 나의 모든 기억을 샅샅이 뒤져봐도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같은 방에서 잠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이는 어렸을 때의 내가 봐도 어떤 사이인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늘 명령조로 말을 했고 할머니는 늘 징그럽다고 하면서도 할아버지가 요구하는 명령 같은 말들을 다 들어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살갑지 못했고,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어린 나는 두 분 사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이가 정말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한 사건이 있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사건이 사실 어렸던 나에겐 조금은 충격이었던 건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과 고모의 모습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때는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이고 계절은 겨울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는 연탄을 사용해서 불을 때는 방이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추울 때면 그 방에 들어앉아 몸을 녹이곤 했다. 시간이 아마 저녁 즈음이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그러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싸운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웠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릴까 봐 무서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큰 소리를 내면서 싸웠는데 너무 놀랐었던 건지 무슨 얘기가 오갔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새 도착한 고모가 헐레벌떡 방 문을 열고 들어와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를 떼어 놓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그 이후 부모님께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한 번 물어봤었다. 부모님은 모른다고 대답했고 그때의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행동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새삼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웠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내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시선으로 봤을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종이었다. 할아버지가 화내면 잠자코 듣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명령조로 말을 하면 다 들어줬다. 사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생활력 강한 할머니가 아버지와 고모, 작은 아버지, 삼 남매를 키웠다고 했다. 쥐꼬리 만한 할아버지의 월급으로 집을 짓고 자식들을 대학 보내기에는 부족했기에 할머니는 늘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만큼 대우받아 마땅했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렇게 대우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얘기하곤 했다.

“네 할아버지가 나한테 언제 짜장면이나 한 번 사준 적 있니?”


할머니는 늘 지나가는 투로 약간은 분에 차서 얘기했다. 본인 몸만 챙기는 사람이라고 늘 내게 할아버지 흉을 봤다. 사실은 그게 맞는 말이어서 할머니가 할아버지 흉을 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할머니는 일평생 같이 살아온 할아버지를 싫어했지만 당연하게 할아버지를 챙겼다. 매운 것을 못 먹는 할아버지를 위해 백김치를 만들었고 밥을 먹고 항상 과일을 먹는 할아버지를 위해 깎은 과일을 접시에 담아 두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싫어했던 게 맞는 것 같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잊을 때마다 했던 말의 속뜻을 잘 모르겠다. 평생 할아버지에게 대접을 못 받고 산 게 서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제 몸만 챙기는 할아버지가 꼴 보기 싫어서였을까?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아버지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절대 할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이게 어쩌면 할머니의 평생의 사소한 기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이제는 할머니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춘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