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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Nov 06. 2021

11월 6일/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의 나의 최고봉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6)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당신을 의심케 하는 사련들은 무엇입니까?

믿는 것은 전적으로 맡기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그때 믿음이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를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한때 믿음이 좋다는 착각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나 정도의 믿음이면 훌륭하지!' 하는 아주 교만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름 착각 속에서 열심을 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십자가를 묵상하게 되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라는 주님의 마지막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책망하듯 다시 들리는 세밀한 음성.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두려워하니?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염려 근심 걱정으로 가득하니?"


그 질문에 대해 얻어진 답은 '나의 믿음 없음'이었다.

나는 십자가를 믿지 못한 것이다.

나는 십자가의 예수님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다.


진짜 믿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진짜 믿었다면... 염려 근심 걱정으로 우울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믿음이 좋다고 착각했다.

왜? 무엇이 나를 믿음이 좋다는 착각으로 몰아갔을까?


그것은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새벽기도도 하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나름 교회에 봉사 헌신도 하니까!

그렇게 행위로 열심을 내는 나의 신앙 일상을 믿음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열심을 내는 행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며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근심으로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이 되지 않을 때는 낙망하는 일도 많았다.


낙망한다면,

두려워한다면,

염려 근심 걱정으로 내 뼈가 녹아내리고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면,

판단 비판으로 나의 시선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시기 질투와 욕망으로 가득 차서 힘들다면,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정말, 십자가를 믿는가?"


정말, 믿는다면!

 

낙망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는다.

관계가 회복된다.

판단과 비판하지 않는다.

시기, 실투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정말, 믿는다면!


그렇게 나의 믿음 없음이 점검되었을 때

나는 주님 앞에 나의 믿음 없음에 대해 회개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만홀이 여겼음을 회개했다.


주님의 십자가는 가볍게 치부될 사건이 아니다.

값없이 주셨다고 그것이 값없는 것이 아니다.

너무 귀하고 값으로 매길 수 없어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그것을 살 수 없어서,

그래서 값없이 주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 없음은 십자가 사건을 값없이 취급하고 만홀이 여기는 가장 큰 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 속 여러 사건을 통해 말씀하신다.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도, 성문 옆 앉은뱅이에게도 묻고 또 물으신다.


"네가 믿느냐?"


그리고 화답하듯 또 말씀하신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믿음은 결국 구원의 문제이다.

십자가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그래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단순히 병을 고치고 안 고치고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느냐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그리고 그 일을 증거 하기 위해 성경 66권이 쓰였다.


성경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길로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말씀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이 있다.

그래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질문은 너무 중요한 질문이다.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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