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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Nov 08. 2021

11월 8일/ 성령의 간구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성령은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전으로서 성도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전 6:19)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비록 우리 인격성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전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돌보시겠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삶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 집중에서 발췌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이다'라는 말씀이 한때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가볍게 술 한 잔을 하는 것도 걸리고,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도 걸리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위반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내 몸이 성령의 전'이니 아름답게 고귀하게 살아야 할 거 같았다.

그렇게 하자니 자유하지 못하고

또 자유롭게 하자니 말씀의 부딪침으로 걸림돌이 생기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으니

참으로 믿음 안에 있으면서도 팍팍하게 살았던 날들이었던 거 같다.


'내 몸을 성령의 전'으로 실천 중인데 왜 나는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냐고?


이런 반항심이 올라와서 말씀을 듣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던 적도 있었으니

참으로 격동적인 신앙의 기초단계를 보냈던 거 같다.


왜 나는 성령의 전으로 사용될 나의 몸 때문에 자유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행위를 기반으로 율법적인 잣대를 나의 삶에 들이댔기 때문이다.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행위에 집중했으니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 나는 자유하다.

그 이유인즉, 행위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에 앞서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주님 내 안에 있는가?

먼저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행위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내가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럴 때 행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믿음과 행위는 하나다.

믿으니까 따라오는 행위!

그것은 하나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 없이도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만약 내 행위로 인해서 힘들다면,

그 행위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반드시 먼저 체크해봐야 한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 앞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믿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성령의 전으로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 하나 됨을 위해, 성령께서 친히 기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진정한 연합으로 그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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