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탐가 Nov 12. 2021

11월 12일/ 거듭남 이후의 변화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당신은 자신의 영혼 구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구원의 체험이란 당신의 실제 삶에서 모든 것이 정말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에 의해 내 안에 이루어진 구원은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내가 빛 가운데 행하는 한,
주님께서는 내게 책망할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주의 생명이 내 의식뿐 아니라 내 의식보다 더 깊은 곳까지 모든 곳에 두루 영향을 주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에서 발췌-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납니까?"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육적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것이냐 묻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한 얘기를 육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말씀한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과 관계가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물과 성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우리 몸의 70%가 물이다.

물이 없으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죽는다.

그래서일까 물은 생명의 원천으로 숭배되고 찬양되어왔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숭배했고, 힌두교는 갠지스강을 숭배했다.

그리스에서는 자연의 샘터를 신전 부지로 숭배했다.


지극히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물이 없으면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다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영적인 세계를 증거 하신다.

영적인 세계에서의 생명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샘물!

그 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호흡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서는 흙(육의 세계)으로 만든 아담에게 호흡을 불어넣으시면서 생명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성령, 생명 그 자체이다.

성령의 호흡이 없으면 '육의 몸'도 살아 있을 수 없다.

호흡이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 죽음에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육의 죽음과 영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육은 살아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들이다.

모든 호흡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서 오는 것이므로 성령이 없으면 곧 죽은 자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

즉 선악과 사건의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인간들이다.

그 인간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길이 되어 주신 것이다.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이을 수 있는 길!

다시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 길!

그것이 곧 거듭남이다.


앞의 스토리,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사건을 증거 하시며 영생에 관해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민 21:9)


이 사건은 십자가 사건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십자가 사건은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난 기묘한 사건이다.

완벽한 공의의 심판!

완벽한 사랑의 구원!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에서 다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에 대한 완벽한 심판까지도 바라봐야 한다.

그 심판을 인지할 때, 더 이상 사단이 나에게 정죄함의 칼날을 휘두를 수 없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은 죄에서 자유할 수 없다.

그래서 사단은 그것을 이용해 믿는 자들을 정죄하며 넘어뜨리려 한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자!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벽한 공의! 즉, 나의 죄를 다 사멸하신 그분의 심판을 바라보자!

그럴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이천 년 전,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내가 구원받았듯이

이천 년 전,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나의 죄는 완전히 사멸됐다.

과거에 지은 나의 죄는 물론 현재 지은 나의 죄, 미래에 지을 나의 죄까지도 완벽하게 사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대! 크로노스의 접합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1월 11일/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