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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Nov 19. 2021

11월 19일/ 성령에 의해 책망받을 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게 된 것이며,
그 용서는 주님의 속성에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갈보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곳이 아닌 오직 십자가를 통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만족되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하나님을 만난 후,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때 나는 용서받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견디다 못해 새벽기도에 나가 무릎을 꿇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나의 죄를 용서치 마소서!"


울며 불며 주님 앞에서 부르짖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세밀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 정말 내가 용서하지 않기를 바라니?"


그러자 나의 마음에 '용서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커졌다.


"아니요. 주님! 전,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서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 손사래까지 치면서 '용서해달라는 나의 모습'

하나님께서 그 모습에 참으로 어이없어 하셨을 거 같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선하신 계획과 이루심을 내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참다못해 '내가 너를 정말 용서하지 않기를 바라니?'라고 한 말씀 하신 거 같다.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너무 아찔하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선악과 사건 이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한 사건이다.

'나를 용서하지 말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범죄의 고백이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하나님 앞에 마치 내가 의로운 양, 하는 고백처럼 들리지만 절대로 그것은 의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의'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십자가 사건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원죄'를 짓고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죄로 인해 자신이 무척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십자가 사건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선할 수 없고, 의로울 수도 없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하려 한다.

선과 악을 구별한다는 착각,

그래서 그것을 심판할 수 있다는 착각,

그러기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심판하며 의로운 척한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이 모든 것은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기인된 것들이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의 죄의 DNA는 인류의 역사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죄'의 DNA다.

우리는 인간이 이상 그 영향권 아래 '죄인'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인한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리하며, 죄도 없고, 완전한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그분께 우리의 죄를 전가시킨 대속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완벽한 사랑이자, 완벽한 공의다.

죄는 심판하시고, 죄를 지은 죄인인 우리는 구원하시는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사건이 바로 십자가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만홀이 여기는 죄를 범하면 안 된다.

'나의 죄를 용서치 말라며 울부짖던 나의 기도'는 십자가 사건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한 기도였다.

그러니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 독생자를 주셨는데

그 죄를 용서하지 말라고 떼쓰는 꼴이라니!


훗날, 이 십자가의 원리를 알았을 때

비로소 나의 기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기도였음을 알게 됐다.


지금 나의 기도는 당연히 바꾸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 그 십자가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감히 닿을 수 없지만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에 들리신 그 사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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