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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Nov 21. 2021

11월 21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 저주의 엄청난 의미를 우리 편에서 깨닫는 것이 죄에 대한 책망이며,
이와 함께 우리는 부끄러움과 회개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 있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갈보리는 주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사랑의 하나님 100%,

공의(심판)의 하나님 100%,

어떻게 사랑과 공의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친히 죽음을 감당하신 십자가 사건은

신묘막측하며 기묘한 사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사건이다.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을 동시에 이루실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와 죄인의 구별이 필요하다.


우리는 죄와 죄인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죄인인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을 용서하기도 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죄와 죄인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죄의 근원은 어디일까?

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선악과 사건을 죄의 근원이라 바라본다.

이 땅의 모든 만물(인간 포함)이 창조된 후, 처음 등장하는 사건이 바로 선악과 사건이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은 옛뱀의 미혹을 받아 선악을 구분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다.

그 나무는 하나님께서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금령을 내려놓은 나무였다.

그것이 처음이자 하나뿐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한 법령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옛뱀의 미혹에 그 실과를 따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 후로 에덴동산은 사라지고,

인간은 '육신은 살아있으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형벌'을 맞이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옛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악으로 물들게 할 옛뱀을 창조하셨을까?

애초에 옛뱀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인간이 죄 가운데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이쯤 되면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의심이 밀려 들어온다.


내가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너무 답답했다.

훗날,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았을 때 나는 만세를 부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나라가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있었다.

바로 영의 존재인 천사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리는 영으로 창조된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그중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루시엘이다.


루시엘은 찬양을 담당하는 천사장으로 가장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다.

종의 신분이었던 그는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기로 마음먹고 반역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마음까지 창조하신 분이었는데

그 마음에 자유의지를 만들어놓으셨다.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부여해주신 것이다.

사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아킬레스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만들어 놓으신 것은 당신의 창조물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예배하고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였다.

그런데 루시엘은 그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같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자 반역이었다.


루시엘이 지은 반역의 마음, 그것이 바로 최초의 죄이자 죄의 근원이다.

이 일이 바로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으므로

죄를 지은 루시엘과 그를 따르던 천사들은 쫓겨났다.

그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옛뱀, 또는 타락 천사, 사단, 마귀, 귀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쫓겨난 사단, 마귀, 귀신이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이 땅에 먼저 와 있던 존재들이었다.

하나님은 이제 당신의 죄에 대한 공의(심판)를 실현시키셔야 했다.

마음의 세계에서만 일어난 보이지 않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흡족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천지를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인간은 아름답고 순수한 존재로 죄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죄의 미혹에도 쉽게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옛뱀이 마치 승리한 듯한 사건이 선악과 사건처럼 비치지만

하나님의 의도대로 보이지 않던 나라에서 하나님같이 되겠다며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 했던 사단의 죄가 만 천하에 공개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제, 죄가 만천하에 드러났기에 하나님께서는 공의(심판)를 실행하실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죄를 모른 채 죄에 미혹당한 죄인(인간)은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죄는 심판하고 죄인은 구원(사랑)하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는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은혜의 말씀으로 다가와야 한다.

내 안에 있던 죄를 심판하시고, 죄인이었던 나는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다시 주시기로 한 언약을 이루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말씀의 의미가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더욱 커진다.


이렇게 죄와 죄인의 확실한 구별이 있어야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죄(사단)는 죽도록 미워하셨고 죄인인 우리는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계획이다.

이 작정하심을 우리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죄는 미워하고 나 자신과 이웃은 사랑할 수 있는 시선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용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죄와 죄인의 구별은 십자가의 화목과 화평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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