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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영적인 일관성의 비결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갈 6:14)
사람이 처음에 거듭날 때 그는 일관성이 없게 됩니다.
상황과 관련 없는 감정이 나타나고 외부적인 것들과 무관한 면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대부분 외적인 일관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적인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바울의 일관성은 저 깊은 근본적인 것에 있었습니다.
그의 일관성의 가장 큰 기반은 세상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고통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오전에는 흐렸다, 오후에는 맑았다 하는 마음의 기복이 크면 클수록

나를 대하는 주위 사람들은 피곤해진다.

'작가라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로 위로를 삼아봤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의 삶의 변화를 더디게 만들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직면!'이다.


도대체 무엇이 내 마음을 이렇게 요동치게 만드는 것일까?

요동치는 마음 안에 당연히 평안은 없다.

평안이 깨진 상태, 그 상태를 직면해서 바라보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깨짐이다.


이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깨졌는가를 바로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경우, 보통 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것들의 문제이다.


나는 정말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서 냇플릭스부터 B TV까지, 모든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하며 본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일에는 지치지 않는다.

그것은 거의 중독에 가깝다.

그렇게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지내다 보면 머릿속이 온통 세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지낸 다음 날은 마음의 요동침이 큰 하루를 보낸다.


내 마음속에 불평불만들이 솟구친다.

내 마음속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들로 가득해진다.

그러면서 불안한 마음이 출렁거린다.


예전에는 내 마음의 요동침의 원인을 잘 알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사는 내 모습은 아주 작은 예화에 불과하다.

일에 미쳐, 일 중독자처럼 일할 때 역시 나는 하나님보다 일을 더 사랑했고

사람이 좋아 사람을 만나러 다닐 때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좋아했다.

세상은 하나님보다 사랑할 다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내 마음을 뺏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내 마음을 직면한 결과,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인가에 빠져있고 더 사랑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고민 끝에 나는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새벽 기도를 하고,

매일 말씀을 읽고,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교제를 나누고,


이렇게 루틴을 정해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위를 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험에 들고 요동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그 행위들로 위안을 삼으며 믿음이 좋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감동이 없고 은혜가 없는 행위들만 존재했다.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열심을 내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왜 나는 승리하지 못할까?

나의 이러한 갈급함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보여주셨다.


십자가가 빠진 기도,

십자가가 빠진 말씀,

십자가가 빠진 예배,

십자가가 빠진 교제는 내 영혼의 갈망을 채울 수 없다고!


영혼의 빈 구멍이 있을 때, 나의 평안은 깨질 수밖에 없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행위는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십자가가 빠진 그 행위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십자가만이 영적인 호흡을 멈추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십자가만이 나의 삶에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다.


나의 영혼에 충만함이 없을 때,

오직 십자가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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