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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 9:13)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지 않으시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지만 내가 주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으실까?"라는 의문을 갖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다하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언약의 관계로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가운데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을 때 나의 공로의식 및 인간적 요소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단지 하나님과 연합된 흘러넘치는 완전한 느낌만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평강과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언약을 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의 근원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당신의 아들을 친히 못 박혀 죽게 하시는 사건 하나로 구원과 심판, 두 가지를 모두 이루시겠다는 언약이다. 이 언약의 심비로움은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정 반대의 개념을 갖고 있는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완벽한 구원과 완벽한 심판이다.


실제로 성경속에 나와 있는 이야기 중에 두 죄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 만난 떡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난다.

두 사람은 동시에 꿈을 꾸고 그 꿈을 요셉에게 해석달라고 부탁한다.

요셉은 두 관원장(죄인) 중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결과 전직을 회복하고 바로에게 다시 술잔을 드린다고 말해준다. 그것은 죄인에서 풀려나며 자신의 직위를 회복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떡굽는 관원장은 정반대의 해석이 나온다. 그는 나무에 달려 죽게 되며 새들이 와서 그 시체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두 죄인 중,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다.

술맡은 관원장은 구원 받을 인간의 예표요, 떡굽는 관원장은 죄의 근원인 사단의 예표다.

주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회복한다고 하는 것은 태초에 인간에게 부여된 다스릴 권리(전직)를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죄인이 있다.

알고 죄를 지은 죄인.

모르고 죄를 지은 죄인.


선악과 사건에서 옛뱀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하나님같이 되리라'며 보좌를 탐한 죄를 짓고 이 땅으로 쫓겨난 자이다. 그는 죄의 근원, 시작이었다. 그렇게 죄를 알고 있는 사단은 인간을 미혹한다.

"너희도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수 있어!"라고! 인간은 죄의 근원을 모르는 채,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사단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간다. 그렇게 인간은 모르고 미혹당해 죄를 짓는 죄인이 된다.

하나님은 죄를 알고 심지어 인간까지 죄(죽음)를 짓게 만든 죄의 근원인 사단은 심판하고

모르고 미혹당한 채 죄를 지어 죽음을 맞이한 인간을 구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다.

성경 66권에 기록된 이야기는 바로 이 언약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언약!

죄인인 인간을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그 언약은 실제로 모두 이루어진다.

십자가에서 못박히시며 마지막에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바로

그 언약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세상의 끝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

지금 우리가 짓는 죄는 완전히 소멸된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 천국에서 살아간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우리가 그렇게 소망하며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

그것은 너무 당연하고 소망이 가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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