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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주님보다 체험을 더 좋아합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2)
실체는 구속 자체이지 구속으로 인한 신앙 체험이 아닙니다. 구속에 의해 발생된 체험의 증거는 언제나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험을 더 이상 실체의 근원으로 오해하지 않고 오직 그 체험들을 발생시킨 진정한 실체에 관심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체험이 우리를 그 체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면 자신을 엄하게 다루십시오. 믿음 자체를 확신하는 믿음은 이미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만이 유일한 참된 믿음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 1:1)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

창세기 1장 1절에, 어떤 단어가 제일 눈에 들어오냐고?

그때, 나는 '창조'라고 대답했다.


또 이어서 질문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왜? 누구를? 위해서 창조하셨을까요?

그때, 나는 '나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나의 사상이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인본주의 사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질문을 통해서,

나는 나의 관심이 천지창조, 이 땅의 것에 더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당연하게 '나'를 위해 천지가 만들어졌음을,

이 세상의 중심이 '나'임을 아주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나의 생각에 교정을 받았다.

천지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우리는 천지를 만드신 분이 누구신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하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은 누구시냐? 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대답하신다. (출 3:14)

스스로 있는 자는 존재 자체로 계신 분임을 말한다.

피조물은 스스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냥 존재 자체로 완전하신 창조주,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실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능력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스스로 있는 자이며,

존재 자체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나의 관심은 그 하나님보다 천지(땅, 육, 물질)에 더 맞추어져 있었다.

나에게 던져진 질문 하나로 나의 관심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감사한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나의 시선이 이제 '하나님'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왜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 것일까?'


'이 상황도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해결하실 것이다.'


이렇게 주체가 하나님으로 바뀌다 보니 나의 삶에 여유가 생긴다.

연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주체가 되는 것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함이 훨씬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 거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평안이다.

그 평안이 나의 삶에, 또 우리의 삶에 깃들기를 기도한다.

나의 경험과 체험에 의지하기보다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다.

언제나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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